[일상] 스타벅스의 그녀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그녀는 외소한 체구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할머니다. 이 테이블과 저 테이블 사이를 아주 천천히 다닌다. 그녀는 껌을 팔고 있다. 그녀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 올 때 부터 줄곧 지켜보았는데, 아직까지 팔은 껌이 하나도 없다.
누구도 껌을 원하지 않는다. 남루한 할머니에게 껌을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구도 돈을 주지 않는다. 동정심이 없어서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낯설어서인 것 같다. 스타벅스의 넓은 홀에 저리 남루하고 깡마른 할머니가 껌을 팔러 다닌다는 그 사실이 낯선거다. 이 홀은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런 일을 생각할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낯선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런 낯설음이 싫은 거다. 동정심이 없는게 아니라 그 상황자체가 싫은 거다. 싫은 것을 없이 하기에는 모른 척하는 것이 최고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환상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녀가 들어오기까지 흐르던 배경음악은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지만 더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서도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를 보면서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간은 어두워지고 마주 앉은 서로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목구멍 속으로 들어온 플라스틱이 주는 이질감을 속으로 꾹꾹 소리없이 참아내고 있다.
스타벅스의 세계가 정지되고 뒤틀려졌다. 그녀의 등장으로 세계가 이상해졌다. 그녀는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갖고 있어야할 그림자도 없고 반사되어야 할 빛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속에 있는 투명인간같다. 그녀의 존재는 부정되고 있고 애써 지워지고 있다. 그녀라는 존재가 갖는 중력이 공간을 왜곡시키듯 그녀 주위로 묘하게 공간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녀의 모습은 갈수록 뒤틀려 보인다.
일순간 현기증이 난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할머니가 내 옆 테이블에 앉는다. 불안하다. 왠지 불안해졌다. 스타벅스에 벌어진 이상한 상황을 보며 사유의 즐거움을 가진 내게 불안함이 찾아온다. 내 공간도 찌그러진다. 편안함은 관망하는 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것은 유리창 너머의 세계에대한 관조일 뿐이다. 편안함이라는 특권은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물리적인 공간이 축소되며 깨져 버렸다.
불안하다.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이 힘들다. 많은 생각이 어지러울정도로 한꺼번에 떠오른다. '껌을 사줘야 하나? 이건 그냥 값싼 동정이 아닐까? 나는 껌이 필요없는데 굳이 사야하나?' 할머니가 동전을 꺼내 세고 있다. 짤각짤각 하나씩 동전을 센다. 신발은 플라스틱 고무 신발이다. 재래시장 어딘가에서 봤었다. 이천원이었다. 몸은 마르고 말랐다. 눈에는 빛이 없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내 불편한 이 메스꺼움을 없애야 한다. 맘속에 울렁거리는 이 불안함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는 척 하면서 나를 보고 있다. 내가 가진 편안함은 그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니 더욱 불안하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지갑을 미리 꺼내야 하나? 동전을 줘야 하나? 천원짜리를 줘야 하나? 밖으로 나가 밥을 사드려야 하나?‘
수많은 생각은 할머니가 자리를 일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천원짜리를 꺼냈다. 할머니에게 드린다. '껌도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뭔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 생겨나는 싸구려 동정심 같은 그런 감정이 두렵고 불안하고 그런 인사치레가 창피하다. 몇번의 주고받는 대화 속에 할머니가 미소를 띄우며 자신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고맙다고 한다. "처음이예요. 복받으세요".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며 스타벅스의 문을 나선다. 공간이 밝아진다. 음악소리가 다시 들린다. 사람들이 재잘된다. 불안함이 사라진다. 세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2013.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