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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마을 회관에 다녀왔습니다.

마을회관에 다녀왔습니다.

근 2년간 코로나로 공식적인 마을 모임이 없었는데, 예전에 없던 이장 연임 인준 문제로 스무명이 조금 안되게 모여 마을 회의가 열렸습니다. 화성시 조례에 연임을 하는 경우에는 마을에서 꼭 선거를 통한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이장님이 공문을 읽어주십니다. 회관의 보일러는 밤에만 얼지 않게 가동을 하기에 바닥은 냉골이었지만 간만에 마을 어르신들을 뵈니 반갑고 좋더군요. 부녀회장님이 타 준 봉지 커피 하나에 손도 가슴도 따듯해 집니다.

이장 연임은 큰 문제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문제가 될리 없는 일입니다. 다른 마을처럼 외지인 수가 토착민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긴 하는데 이 곳은 외지인의 유입이 천천히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진행되는 과정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연임의 정당성, 후보등록이나 고지의 공정성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장님은 잘 진행을 했지만 이번에 화성시에서 이런 조례가 내려온 것도 처음이고 따로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어서 진행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들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죠.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다들 비슷했습니다. 마을 이장과 지도자의 문제인데요, 전에는 지도자가 되면 지도자가 그 다음 이장이 되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이제는 지도자를 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지도자가 없으니 이장이 지도자를 겸임해야 하는가, 아니면 예전에 이장했던 이들이 다시 지도자나 이장으로 재임해야 하는가 등 복잡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그 자리를 물려받을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젊다는 것은 50대, 60대를 말합니다. 혹 젊은 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마을로 이사온 지 10년이 넘는 사람들도 마을 사람 보기에는 외지인은 외지인이라는 생각때문에 묘한 부담감을 갖고 염려합니다. 어릴 때부터 한평생을 살아온 분들이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일종의 위화감이죠. 땅과 마을에 기억과 생활이 겹쳐져 하나였는데 다른 존재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본능적인 부담감과 불안감이 생깁니다.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염려와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염려가 공존합니다. 마을의 현안에 대한 얘기들도 나왔고 적절하게 의견이 모아집니다. 크게 얘기하고 주장을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다들 형동생 사이고 사돈에 팔촌이기 때문입니다. 핏줄과 동문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거론하는 문제들은 일상과 생업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외지에서 농막을 짓고 들어와 사는 이들이 있는데 주변이 온통 쓰레기장처럼 적치를 해놓았는데 농로까지 짐들이 나왔다든지,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게 문제라든지, 수로 정비공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는데 설계할때와 시공할 때가 얘기가 다르다든지 등등의 얘기들이었습니다. 마을 전기를 쓰는 외지인은 전기세를 내며 마을에 감사의 마음으로 소정의 돈을 내는데 그런 이들이 여러명인지라 어떻게 과금을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고 그 사람들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떳떳한 것인지 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공사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질책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도 그 일하기 어렵겠다는 동정도 있었습니다. 수고하는 이장에게 주는 이세 문제도 거론되었습니다. 2년 정도 없었는데 다시금 걷어서 드리기로 했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여러 자질구레한 마을일을 처리하는 이장에 대한 소정의 격려금이 될 듯 합니다. 조만간 이장님하고 식사라도 한끼 하면서 노고를 치하드릴 생각입니다.

유지교회를 섬긴지 10년이 되었는데 근래에는 이장님과도 마을 분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교우 장례때문에 마을 선산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건데, 마을 어르신들이 친근하게 대해주고 여러모로 대우를 해주시더군요. 나는 사람들 만나는 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타입인데 그런 부담감없는 편한 모임이었습니다. 덕분에 마을 일에도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마을의 대소사를 처리함에 너무 많은 분들의 의견이 있어서 진행이 어렵다는 의견에 유명무실했던 마을개발위원회를 다시 소집했는데요, 10명이 안되는 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이장님의 추천으로 이뤄졌습니다. 조직의 일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저로서는 “기도만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꼭 해야 한다 하시기에 그대로 따랐습니다. 마을을 잘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거라 생각합니다.

전임 이장님들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인생과 마을에 대한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고 부담없이 말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동안 마을과는 멀고도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본 시골에서는, 교회가 인원이나 재정적으로 튼실하지 못하면 목회자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고 돕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난 십 년간 교회의 평판이 좋아졌고 재정도 나름 튼실해졌습니다. 교인 수는 그대로이지만 사오십대 분들이 계시는 까닭에 여러모로 힘이 생겼습니다. 전에 조합장으로 오랜 기간 섬기셨던 분들과도 안면이 생기고 교인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교회가 여러모로 든든해 졌습니다. 참 어려운 부분인데, 교회가 마을과 사회에서 독립적인 섬이 되는 것과 영향력을 갖고 그 안에 공존하는 문제입니다. 각 마을과 교회의 사정이 다른 까닭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지향점이 있을 뿐이죠.

도시의 눈으로 보면 후줄근한 시골교회지만 지난 십년간 계속해서 교회가 바뀌어 왔기에 마을 분들은 그것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몸에 이상이 생긴 교우가 있어서 정말 힘을 다해 기도했는데 놀라운 결과로 많은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교인의 남편이 같은 증상으로 발병을 했는데 그 또한 힘을 다해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수술과 치료결과가 같은 병을 가진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나온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교인들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얘기를 한 듯 하더군요. 기도해 주셔서 치유가 되었다는 내용이죠. 비슷한 시기에 두 건이나 그런 일이 생겼으니까요. 실은 그렇게 기도한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많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열흘 동안은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이 내려앉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례를 치루고 오늘 마을 회의를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귀한 은혜의 감정과 소망의 의지를 주셨습니다. 부족하고 약하고 실수투성이인데 이런 나를 주님의 종으로 여기시는 교우들이 있고, 작은 교회 목사인데 목사님 목사님 하며 대우해주시는 마을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갈등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느덧 따듯한 눈길과 염려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회관을 나오면서 다시금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늘 보던 교회와 마을 풍경이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눈을 새롭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을 회관에 다녀왔습니다. 주님의 돌보심을 느끼는 깊은 배움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