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휴가 끝 가을 시작
내게 주어진 사회적인 삶은 아직 여름일인데 마음은 벌써 늦가을처럼 서늘하다. 가슴은 비어있는 듯 헛헛함에 시리고 목뒤에서는 뭐 하나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민망함이 스물스물 정수리로 올라 온다.
이번 주는 휴가였다.
아이는 엄마와 옆도시에 물놀이를 두 번 갔다 왔고, 어제 누님과 식사를 한 번하고 며칠 동안 책을 세권 읽었다. 서울역 시청광장에 가서 노란 리본들도 보고 왔다. 그리고오늘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왔다.
휴가가 끝날 즈음에야 여름이 끝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름이 끝났다는 것을 느끼니 내 젊음의 여름도 지나감을 느낀다. 여름이 지나갔고, 젊음도 지나갔다. 이번 여름은 하릴없이 책만 보고 생각했다. 비어있는 시간을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채워졌다는 느낌은 없다. 휴가도 별반 다르지 않게 보냈다. 뭔가를 했지만 채워지진 않았다. 오히려 텅빈 가슴만 더 섬세하게 느꼈다.
내게 주어진 사회적인 삶은 아직 여름일인데 마음은 벌써 늦가을처럼 서늘하다. 가슴은 비어있는 듯 헛헛함에 시리고 목뒤에서는 뭐 하나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민망함이 스물스물 정수리로 올라 온다. 이런 것들에 생각이 미치면 습관적으로 잠시 눈을 감게된다. 혹 내 모습과 시간이 보이지 않아 편안한 마음이 될까 싶어 눈을 감는다.
여름 끝에 과일이 익듯이 내게도 뭔가 열매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은 없다. 하나님과 세상과 교우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단단히 영근 채 가을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가장 미안하다. 가장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낸 것은 내 자신이었다.
휴가 끝에, 깊은 감사와 열정보다는 옅은 허무의 바람이 가슴에 들어 오는 것을 보니, 나이가 조금 더 들었고 가을을 타기 시작한 듯 싶다.
[일상] 떠보기
사람을 떠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사회적 기술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구사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내 저열한 모습만 드러내는 꼴이 된다.
인간관계에서 언제부터인가 안하는 행동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을 떠보는 것"이다.
20대에는 순수해서 열정과 순수함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두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뒤늦게 경험했다. 그런 일로 몇번 어려움을 겪게 되다보니 사람의 본심이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믿지 않고 그 뒤의 본심과 진심을 파악하곤 했다. 사람을 떠본다는 건 말이나 행동으로 일종의 떡밥을 던져놓고 그 사람의 본심과 뒷이야기를 끄집어 내거나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떠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사회적 기술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구사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내 저열한 모습만 드러내는 꼴이 된다. 그것은 나같이 사회성이 부족했던 사람이 시전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습되었다고나 할까, 한두 마디 말로 상대방을 떠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30대를 거치던 중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진짜 생각을 감추는 것은 대화하는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하여 그들 또한 떠보는 사람들을 위한 떡밥을 이용해 거꾸로 떠보는 사람을 떠보는 고급 기술을 쓴다는 것도 알았다.
특히 자기가 남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단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를 가진 리더들은 자신이 모임의 구성원이나 사람들을 잘 떠보고 그 결과를 확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회원들과 세상사람들은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그런 리더의 수준을 다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행동해 주곤 한다. 리더는 자신을 어부라 생각하고 사람들을 고기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고기가 낚시꾼을 낚아 키우는 모양과 비슷했다.
그렇게 떠보기로 일색하는 리더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꾸로 떠보기 당하고, 사람들에게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받으면서도, 결국 자신들만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더욱이 떠보기 기술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쉴새없이 서로를 떠보고 넘겨짚는 그 수고스러운 행동을 하는 불신과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런 모습을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웠는지 모른다. 더욱이 나는 그런 눈치와 지혜도 없는 사람인데 마치 그런 사람이나 된 걸로 착각하고 그리 행동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사람을 봐도 잘 모른다. 내가 내 자신도 잘 모르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확신도 없다. 사람들의 말을 안믿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믿을 말도 없고 못믿을 없다는, 나도 모를 상태가 되었다. 마치 도화지 안에 연필로 가득 그려넣은 낙서를 모두 지우개로 지운 것과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지워졌지만 종이가 연필에 눌린 흔적이 남아있는 애매모호한 상태와 비슷하다. 그래도 아직 마음에는 힘주며 눌러쓴 흔적들이 남아있어 조금은 더럽지만, 그래도 어중띤 백지와 같은 여백이 된 느낌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사람이 있다. 숨길 일도 없고 숨길 마음도 없고 넘겨 짚어야 할 일도 없다. 다행이다. 다만 속 생각과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는 순수한 이들과의 만남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계산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되, 배려하고 진심을 담아낸 얘기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큰 행복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마저 불신하며 떠봐야하는 관계 뿐이라면 그 얼마나 불행한 삶인가. 하지도 못 할 쓸데없는 잔재주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만 둔 어리석은 나에게 작은 격려를 보낸다.
2014.8.7
[일상] 유월의 뽀르소
6월의 시골은 농사의 이른 열매를 거두는 달입니다. 시골에서 교회다니시는 분들은 "첫열매"라하여 처음 익은 열매들을 신에게 바치던 구약성경의 풍습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즈음에는 여러가지 곡식들을 교회로 자주 갔다주곤 합니다. 호박이나 오이, 토마토를 들고 교회당으로 가는 풍경이 재미있고도 정겹습니다.
6월의 시골은 농사의 이른 열매를 거두는 달입니다. 시골에서 교회다니시는 분들은 "첫열매"라하여 처음 익은 열매들을 신에게 바치던 구약성경의 풍습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즈음에는 여러가지 곡식들을 교회로 자주 갔다주곤 합니다. 호박이나 오이, 토마토를 들고 교회당으로 가는 풍경이 재미있고도 정겹습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도 없고 많은 것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이토록 오래 전 모습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정감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 덕분에 한 마을에 사는 나도 떨어지는 콩고물은 아니지만 떨어지는 과일들을 한두개씩 얻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하니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며칠 전에는 할머니 한 분이 뽀르소를 한봉지 배달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들에서 따먹던 뽀르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알이 굵어 먹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녀석들이었습니다. 한봉지를 얻어서 입안에 털어 넣어봤는데 시큼달콤한 맛이 말 그래로 정말 끝내 줬습니다.
지금은 글자로 뽀르소라고 썼지만, 며칠 전에는 정확한 이름이 “뽈소"인지 “뿰소"인지 확실히 몰랐습니다. 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원래 이름은 뽀르소가 아니라 보리수라고 합니다. 구글선생님 덕에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이름이 보리수라하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그 나무인가 싶었지만 그 보리수나무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 보리농사를 지을 때 보리가 익을 때쯤 열매가 맺힌다 하여 보리수나무라는 별칭이 생겼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그 보리수나무였다면 뭔가 의미가 더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더라도 열매가 피처럼 빨간 것이 꽤 영험해 보이긴 했습니다. 한 움큼씩 손에 집어 입에 털어 넣고 오물대니 빨간즙이 입 안에 가득하더군요. 뭐라도 깨달음이 오겠나 싶어 눈을 감고 가만히 마음을 다잡고 있어보니 뭐 특별한 깨달음이 오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뽀르소를 잡은 두 손이 어느덧 빨갛게 물들고 입고 있던 옷에도 그만 빨간 물이 들어버렸습니다. 마치 피처럼 말이죠. 그리고 잠시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 왔습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런 아주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생각 때문에 오는 현기증이었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갑작스레 현기증이 스쳐 지나갑니다. 마치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사라진 듯한 아찔함에 현기증이 나는 그런 이상한 때가 있습니다.
내가 느꼈던 현기증은 단순하게 그 빨간 뽀르소와 할머니, 그리고 유월이라는 이 독특한 시간들이 가져다 준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25라든지 그 때 소녀였던 아이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아직 이 땅에 살아가고 있고 그리고 그 때 그 땅에 자라던 뽀르소들이 지금도 자라고 있고 이제는 그 때를 모르는 내게 그 때만큼이나 붉은 뽀르소가 내 손에 전해져 담겨져 있다는 그런 계속된 연결들이 내게 짧은 시간이나마 그 때를 느끼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뽀르소를 가져다 준 할머니가, 60여년 전 이 땅이 아직 피처럼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기 전 유월의 이 맘 때 나처럼 뽀르소를 한움큼 입에 털어 넣으며 웃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 때의 할머니와 지금의 나라는 평범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세월의 간극과 뽀르소 열매의 겹쳐짐이 그저 가볍지도 또한 무겁지도 않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시큼하기도 달콤하기도 한 유월의 뽀르소 맛처럼 말입니다.
어느덧 며칠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산과 들 사이에 자라던 뽀르소들도 이제 슬슬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과 옷을 빨갛게 물들였던 그 피빗들도 이제는 었던 손도 이제는 다시금 원래의 살색을 찾았습니다. 이제 60년도 더 넘었던 그 옛날의 피빛어린 역사의 기억들의 상처도 사라진 듯 보입니다. 아직도 사회 이곳 저곳에는 그 상처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왜곡된 망령으로 그 존재감을 외치며 남아 떠도는 듯 하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는 잊혀진 듯 합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이 유월이라는 시간도 곧 지나가 버리고 잊혀질 듯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들에 산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붉디 붉은 뽀로소는 내년 유월에도 다시금 그 붉은 피빛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후년에도 그 후년에도 말이죠.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나 또한 그 다음의 누구에게 이 붉디 붉은 뽀르소를 건네주며 그 뽀로소를 받는 누군가는 또 다시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작은 현기증을 느끼는 그 시간이 올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4.6.13
[일상] 죽음의 방문
엄마가 아이 말을 듣더니 아이를 안은 채 말을 해 줍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야. 죽음 후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만들 수 있어. 죽음 후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을 볼 수 있어. 우리는 모두 죽지만 죽음은 삶의 일부야". 대답해 줍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그렇습니다. 잠자리에 든 아이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몸을 뒤척입니다. “왜... 잠이 안 와?" 내가 묻습니다. 요즘 아이가 잠을 잘 못 이루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퉁명스럽게 '그럼 책읽다가 자'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대답합니다. "응. 잠이 안 와". 왜 그러냐고 내가 묻습니다.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빠, 죽는게 무서워”. 죽는게 무섭다니 정말 쌩뚱맞은 말입니다. 왜 그렇게 느끼냐고 내가 묻습니다. "죽는게 무섭고 걱정돼"라고 대답합니다. 어떤게 무섭고 걱정되냐고 묻습니다. "계속 잠자야 하잖아"라고 대답합니다. 너는 요즘 매일 더 자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냐 그러면 더 좋은 것이 아니냐라고 되묻습니다. "아니, 그런 잠은 싫어. 계속 일어나지 못하고 자는 죽는 건 싫어. 놀지도 못하고 사람들도 볼 수 없고... 무서워". 아이는 무서워합니다. 잠시 생각한 후에 “누구나 다 죽어 … 그래서 삶이 소중한 거야"라고 내가 대답합니다. 아이는 “응” 대답하고 잠이 들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이방에서 소리가 납니다. 아이방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가 거실로 나옵니다. 거실에서 책을 읽던 엄마가 아이를 맞아 줍니다. 아이가 많이 웁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웁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아이가 죽음이 무섭다고 대답합니다. 엄마가 아빠가 죽음에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아마 아까 방에서 나와 아이가 나눈 이야기를 들었나 봅니다. 아이는 아빠가 말하길 죽으면 다 끝이라고 말해줬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들었나 봅니다.
엄마가 아이 말을 듣더니 아이를 안은 채 말을 해 줍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야. 죽음 후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만들 수 있어. 죽음 후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을 볼 수 있어. 우리는 모두 죽지만 죽음은 삶의 일부야". 대답해 줍니다. 그리곤 아이와 함께 이야기합니다. 하루 종일 있었던 좋은 일들에 대해 묻고 아이는 어느새 눈물을 닦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로보트 이야기, 태권도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합니다. 나는 뒤늦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얘기를 듣다가 다시금 자기 방으로 돌아가 누운 아이 옆에서 아이를 두드리며 왠지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재웁니다.
내게 죽음의 공포는 20살이 되어서야 찾아 왔는데, 아이는 너무 일찍 죽음을 만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빠보다는 엄마의 품이 더 안정감이 있고 따스한 이야기가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곤 문득 성경의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에 적힌 난해한 성경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출애굽기 4장 21-26절)
어두운 숙소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의 공포에 맞닥드리게 된 모세와 그의 아들, 그리고 지혜로 그 모든 죽음을 넘긴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동포를 구하기 위해, 오히려 이집트의 수 많은 아이들이 죽고 아이를 잃은 부모의 울부짖음을 듣게 될 그 가족이었지만 죽음의 공포를 넘긴 이들은 수 많은 이집트인들의 죽음에 그저 기뻐하지만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음 무서운 것이고 삶은 소중한 것임을 미리 경험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단지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타인의 생명 또한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삶만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젊음의 때에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이제 많이 흩어졌지만, 아직도 그 두려움과 공허감이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한 소중함을 발견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고 아이또한 그것을 조금이나마 느낀 까닭인듯 하고요. 갈 수록 살아있다는 것이, 그리고 내 사람들이 아직 옆에 남아있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일상] 스타벅스의 그녀
불안하다.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이 힘들다. 많은 생각이 어지러울정도로 한꺼번에 떠오른다. '껌을 사줘야 하나? 이건 그냥 값싼 동정이 아닐까? 나는 껌이 필요없는데 굳이 사야하나?' 할머니가 동전을 꺼내 세고 있다. 짤각짤각 하나씩 동전을 센다.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그녀는 외소한 체구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할머니다. 이 테이블과 저 테이블 사이를 아주 천천히 다닌다. 그녀는 껌을 팔고 있다. 그녀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 올 때 부터 줄곧 지켜보았는데, 아직까지 팔은 껌이 하나도 없다.
누구도 껌을 원하지 않는다. 남루한 할머니에게 껌을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구도 돈을 주지 않는다. 동정심이 없어서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낯설어서인 것 같다. 스타벅스의 넓은 홀에 저리 남루하고 깡마른 할머니가 껌을 팔러 다닌다는 그 사실이 낯선거다. 이 홀은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런 일을 생각할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낯선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그런 낯설음이 싫은 거다. 동정심이 없는게 아니라 그 상황자체가 싫은 거다. 싫은 것을 없이 하기에는 모른 척하는 것이 최고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환상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녀가 들어오기까지 흐르던 배경음악은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지만 더이상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서도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를 보면서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간은 어두워지고 마주 앉은 서로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목구멍 속으로 들어온 플라스틱이 주는 이질감을 속으로 꾹꾹 소리없이 참아내고 있다.
스타벅스의 세계가 정지되고 뒤틀려졌다. 그녀의 등장으로 세계가 이상해졌다. 그녀는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갖고 있어야할 그림자도 없고 반사되어야 할 빛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속에 있는 투명인간같다. 그녀의 존재는 부정되고 있고 애써 지워지고 있다. 그녀라는 존재가 갖는 중력이 공간을 왜곡시키듯 그녀 주위로 묘하게 공간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녀의 모습은 갈수록 뒤틀려 보인다.
일순간 현기증이 난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할머니가 내 옆 테이블에 앉는다. 불안하다. 왠지 불안해졌다. 스타벅스에 벌어진 이상한 상황을 보며 사유의 즐거움을 가진 내게 불안함이 찾아온다. 내 공간도 찌그러진다. 편안함은 관망하는 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것은 유리창 너머의 세계에대한 관조일 뿐이다. 편안함이라는 특권은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 물리적인 공간이 축소되며 깨져 버렸다.
불안하다.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이 힘들다. 많은 생각이 어지러울정도로 한꺼번에 떠오른다. '껌을 사줘야 하나? 이건 그냥 값싼 동정이 아닐까? 나는 껌이 필요없는데 굳이 사야하나?' 할머니가 동전을 꺼내 세고 있다. 짤각짤각 하나씩 동전을 센다. 신발은 플라스틱 고무 신발이다. 재래시장 어딘가에서 봤었다. 이천원이었다. 몸은 마르고 말랐다. 눈에는 빛이 없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내 불편한 이 메스꺼움을 없애야 한다. 맘속에 울렁거리는 이 불안함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는 척 하면서 나를 보고 있다. 내가 가진 편안함은 그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니 더욱 불안하다.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지갑을 미리 꺼내야 하나? 동전을 줘야 하나? 천원짜리를 줘야 하나? 밖으로 나가 밥을 사드려야 하나?‘
수많은 생각은 할머니가 자리를 일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천원짜리를 꺼냈다. 할머니에게 드린다. '껌도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뭔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 생겨나는 싸구려 동정심 같은 그런 감정이 두렵고 불안하고 그런 인사치레가 창피하다. 몇번의 주고받는 대화 속에 할머니가 미소를 띄우며 자신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한다. 고맙다고 한다. "처음이예요. 복받으세요".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며 스타벅스의 문을 나선다. 공간이 밝아진다. 음악소리가 다시 들린다. 사람들이 재잘된다. 불안함이 사라진다. 세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2013.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