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쌓아 놓은 채 읽지 않은 책들과,
옆에 있지만 손내밀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있습니다.”
“A certain guilt resides within me—toward the books I have bought but left unopened in their stacks, and toward those who remain close by, yet to whom I cannot seem to reach."
[일상] 첫 고구마
첫고구마가 들어왔습니다. 대략 논에 첫 낫질이 시작될 때 쯤이면 고구마도 캐기 시작합니다. 고구마를 캐면 항상 처음에 크고 좋은 것들로 한상자를 갖고 오십니다. 첫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개념이죠.
[일상] 그림 일기 몇개
작은 수첩에는 일상의 기록만이 아니라 낙서도 있다.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꽤 신기하고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람에게 옮겨 놓으면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린 것이 있고, 못보던 것을 보게 된다. 물건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들이 물건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듯이, 사람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이 그 사람의 의미를 특별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물건과 사람을 관찰할 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거다. 나의 무지와 무감각함이 더 드러나게 되고 선입견과 달라진 시선들이 분명해진다. 무엇을 본다는 행위는 결국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상] 밤 고구마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젊은 날의 야식은 다만 아침에 부은 얼굴을 요구할 뿐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야식은 활명수가 없다면 소화불량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활명수가 맛있게 느껴지고 야식을 먹을 때마다 소화제 생각이 난다면 위장이 찬란한 젊음의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정신승리] 일상에 의미두기
삶이라는 주어진 시간이 흘러가는데 당장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삶의 의미가 흔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저울에 매달 수 없는 가치있는 삶도 있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위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고 오래되다 보면 사람이 조금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일상] 거울이 있는 카페 풍경
거울은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을 비춰 줍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즐겁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먹먹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울은 내 얼굴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춰 주나 봅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봅니다. 거울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안전하게 훔쳐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일상] 방으로 들어온 가을
방 안으로 가을이 들어섰다. 국화 냄새가 콧속으로 진하게 들어오는 것이 참 좋다.
낮에 마당 한켠에 피어있던 꽃들을 꺽어 꽃다발을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 놨다. 먼저 음료수 PT병을 잘라 작은 화병을 만들었다. 하나는 조금 큰 병으로 침대방에 또 하나 작은 것은 내 방에 놓았다. 실은 마당에는 진즉부터 꽃들이 피었다. 이일 저일로 바삐 보내다 보니 꽃이 핀 것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오늘 마당에 있던 꽃들을 보니 피었던 꽃들은 거반 시들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뒤늦게 나마 남은 꽃들을 보면서 불현듯 방에다 화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방으로 들여 놓았다.
[일상] 자동차 정비
매년 요맘 때면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곤 한다. 처음에는 100여만원 가까이 들었던 보험료가 어느덧 3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 동안 접촉사고가 없었던 탓에 보험료가 할인되고 무엇보다 자동차가 연식이 오래되어서 이모야 저모양 자동차 보험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어찌보면 노후된 자동차가 더 위험하니 보험료가 더 많아져야 될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보험물정 모르는 내 생각일 뿐이고, 보험회사에서 금액을 산정하는 기준은 뭔가 심오한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상]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가서 모래사장에 누으면 꼭 무엇인가를 그리곤 한다. 잘게 부서진 가루 위에 선을 그어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린다. 그저 멍하니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것들 위에 내 머리 속에 있는 풍경과 생각들을 써놓는다.
[일상] 쏘세지가 싫어요
이씨가 사무실로 매주 찾아 온지도 벌써 몇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사는 동네가 노숙자들이 많은지라 종종 사무실로 도움을 바라고 찾아오는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을 돌려보내는 역할은 늘 제가 맡곤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돌려보내기만 하다보니 내 자신의 신념과도 위배되는 것 같고 양심에도 많이 거리낌이 생겨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자 생각했습니다.
[종교] 두 마음 두 생각
간밤에 더위에 지쳐, 밖에서 밤새도록 떠드는 이상한 얘들 소리에 지쳐 아침에 쾡한 눈으로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간장 게장 맘껏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갑작스레 잡힌 저녁식사 약속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약속한 집에 들어가 밥상이 펼쳐졌다. 방상에 나온 건 "간장게장". 안도현 시인의 간장게장이라는 시가 생각났지만, 눈물을 머금고 그자리에서 밥 두 공기와 간장게장 두마리를 꿀꺽 해치웠다. 밥을 먹고 나자 정말 맛있는 복숭아가 후식으로 나왔다. 옆에 앉은 아이가 복숭아 몇조각을 삼키더니 말한다. "아까 복숭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먹고 싶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 저녁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저녁이었다.
[일상] 두달만의 방문
병실에서 간호를 돕는 분들을 볼 때마다 늘 얼마를 벌고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월급은 잘 받는지 하는 일에 어려운 것은 없는지 그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 도움 줄 입장도 아니고 능력도 없으면서 그냥 호기심에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일상] 요즘 내게 필요한 것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신뢰를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참 어렵다. 특별히 실력이 있거나 권위를 내세울 만한 무엇이 없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들과 일을 하다보면 내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실력과 진심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일상] 문방사우 文房四友
"친함"이라는 말에 사람들보다는 "물건"이 떠오르고 그것들에 더 큰 애착을 갖는 내 자신이 조금 "한심"하긴 하지만 옛 어떤 문인은 주변 사람들보다는 주변의 물건들을 의인화 시켜서 친구처럼 만들고 얘기도 했던 것을 보면 지금 내 모습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