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쌓아 놓은 채 읽지 않은 책들과,
옆에 있지만 손내밀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있습니다.”
“A certain guilt resides within me—toward the books I have bought but left unopened in their stacks, and toward those who remain close by, yet to whom I cannot seem to reach."
[일상] 방으로 들어온 가을
방 안으로 가을이 들어섰다. 국화 냄새가 콧속으로 진하게 들어오는 것이 참 좋다.
낮에 마당 한켠에 피어있던 꽃들을 꺽어 꽃다발을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 놨다. 먼저 음료수 PT병을 잘라 작은 화병을 만들었다. 하나는 조금 큰 병으로 침대방에 또 하나 작은 것은 내 방에 놓았다. 실은 마당에는 진즉부터 꽃들이 피었다. 이일 저일로 바삐 보내다 보니 꽃이 핀 것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오늘 마당에 있던 꽃들을 보니 피었던 꽃들은 거반 시들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뒤늦게 나마 남은 꽃들을 보면서 불현듯 방에다 화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방으로 들여 놓았다.
[종교] 히브리어 성경. BHS 비블리카 헤브라이카 슈트트가르트 한국어 서문판.
슈트트가르트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구입했습니다. 전에 것은 제4판인데다 불법 복사본이었는데 14년 동안 사용했습니다. BHS가 진즉 5판으로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서 언젠가 독일에서 정식 인쇄된 것으로 구입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성서공회에서 서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한국어판을 구입했습니다.
[책]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유인원(類人猿)의 한자 뜻은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다. 원숭이 같은데 따지고 보면 원숭이가 아니다. 사람같은데 따지고 보면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 유인원이다. 그런데 엄격히 말해서 유인원은 원숭이가 아니다.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
시대의 포화와 불길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나르시즘 혹은 개인적 트라우마에 대한 자화자찬과 자기연민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와 세상의 트라우마는 늘 잊혀지고 외면당한다. 시대 어두운 불길 속에 사는 이들에겐 시대와 자신의 구분이 없고, 시대의 트라우마와 개인적인 트라우마 사이의 간극도 없다. 한 개인이 곧 역사며, 역사가 곧 그 사람 하나다. 극단적인 시대에는 극단적인 이상함이 너무도 쉽게 드러난다.
[상상] 어느 죽음
기대와 희망이 사그라지며 절망으로 부폐되어가는 과정은 분노와 분노의 연속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포기할 때쯤이 되어서야, 차라리 진즉 포기하고
작고 소중한 것들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씁쓸한 상상을 하기마련이다.
[일상] 운동회
어릴 때 운동회가 생각난다. 운동회 날 아침은 학교 가는 길부터 달랐다. 기념품에 불량식품에 사진사들이 요란하게 학교 등교길을 장식한다. 학교 문을 들어서면 만국기로 장식된 하늘에 비니루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운동장에는 전날 미리 석고를 부어 그린 100미터 달리기 라인과 릴레이 달리기용 라인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지금 생각하니 꼭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그림같다. 아이들은 모두가 똑같은 운동복을 입는다. 나일론 재질의 위 아래가 하얀 운동복이다. 목에는 청군과 백군을 나타내는 헤어밴드가 걸려있다. 운동장에는 벌써부터 일찌감치 와서 뛰어 노는 얘들도 있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운동회가 시작한 뒤에 오기 시작하지만, 좋은 자리를 놓칠새라 일찍부터 와서 그늘이 진 명당자리에 돗자리를 펼쳐놓은 부모들도 있다.
[일상] 아이의 블랙홀
“나도 밥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거든. 블랙홀도 먹다 먹다 보면 배탈이 날거야” 대답합니다.
“응? 그래? 블랙홀이 배탈나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물었습니다.
[일상] 혼자만의 시간에 실패했다
혼자 방안 책상에 앉아 있으면 잡념이 많이 떠오릅니다. A4 한장 채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페에 들고 가서 타이핑을 하면 집중도 잘되고 빠른 속도로 타이핑이 됩니다. 카페의 소음과 열린 느낌이 마음의 잡념을 없애주서 그런 듯 합니다.
[상상] 사랑과 슬픔
영혼은 사랑에 끌리고 밀려 난다. 저기 더 큰 사랑에 여기 내 안의 사랑이 끌려 간다.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끌어내 크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은 이상이다. 항상 나보다 더 큰 사랑을 찾는다. 그래서 사랑은 이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