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였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어 정확한 종류를 모르겠지만, 클래식한 디자인이라기보다는 현대적인 스포츠함이 가미된 회색의 중형 세단이다. 내가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가 애매함도 있고 이걸 어떻게 유지해야 하나 살짝 고민도 되었지만, 유지비까지 지원해 준다는 말에 나는 어느덧 차에 타 핸들을 잡고 있었다. 나는 좋은 차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는 순간 안정감과 속도감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멋진 차를 탄다는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이 들었다. 그래!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 처지에 이걸 몰고 다닌다고 생각을 하니 여러모로 사람들 눈이 의식이 될거같아 잠시 엑셀이 늦춰지고 차를 멈추었다. 그래서 꼼수를 부린 것이 BMW마크를 가리는 것이었다. 앙증맞게 다른 영문 이니셜을 새겨 넣은 마크를 만들어 가렸다. 사람들이 BMW인줄은 모르겠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차 모습만 봐도 어떤 차인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름만 보이지 않으면 상관이 없었다. 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했다. 도로는 한산했다. 역시 생각 이상으로 차가 잘 버텨주었고 고속주행으로 갈 수록 차는 더욱 더 안정되었다. 과속 벌금을 생각하지도 않은채 엑셀을 밟았다. 속력은 200km/h였지만 힘이 딸리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코너링에서도 차는 안정적으로 질주했다.
결국 차를 몰고 간 곳은 언젠가 놀러 갔던 바닷가였다. 들뜬 마음으로 놀러 갔지만, 바닷가는 조금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어촌의 한적한 풍경만 남아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함께 간 동료들은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다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바다는 왠만해서는 얼지 않는데 참 이상할 일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은 의외로 차갑지 않았다. 단지 서해바다 특유의 진흙의 퀴퀴함이 유쾌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숙소로 정한 민박집은 어촌의 한산함을 넘어서 이상하리만치 낡았고 더러웠다. 더 신기한 것은 바다는 얼음이 엉겨붙어 있었지만, 헛간같아 보이는 민박집은 한 여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뭔가 이 세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이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존재하지 말아야 할 그 무엇같이 느껴졌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그 속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는 수 많은 이름모를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잠시라도 발을 멈추고 있으면 벌레들은 발을 타고 올라 올 지경이었다. 방 한 켠에는 눅눅한 이불이 깔려 있었고 아마 우리들은 그 곳에서 잠을 자야 할 듯 싶었다. 어찌 되었든 옷을 벗어 벌레들을 내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집안의 찝찝함 보다는 겨울 바다가 더 날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바다로 뛰어 들자, 역시 물은 차갑지 않았다. 조금 멀리 나가자, 해안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보였다. 해안으로 보였던 그 곳은 실제로는 섬이었다. 바닷쪽으로 빠져나와 곧 섬이 될 모양이었다. 물은 서해바다의 칙칙함과 달리 다시금 푸른 바다빛을 띠고 있었고 상쾌함을 더 해 주었다. 그 물 속에 안정감있게 떠 있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수영을 못하고 허벅지 이상의 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런 내가 그렇게 물속에 들어가 자유롭게 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은 애초부터 신기한 일의 연속이었기에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이 들면서 이내 물에 떠있는 내 자신이 납득이 되었다. 사람은 쉽게 환경에 적응한다.
하지만 섬 숙소의 더러움과 벌레들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섬이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불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숙소 어딘가에 가스를 틀어놓고 나왔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 저기에 불만 붙이면 되는 구나’. 뭔가 불을 낼 수 있는 것만 있다면 섬은 그 숙소는 깨끗하게 불타오를 것이다. 결국 섬으로 가까이 가 숙소 안으로 돌멩이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숙소 마당에는 깡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 깡통에 충격을 주면 뭔가 불꽃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결국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불꽃은 생겨났고 일순간에 숙소와 섬은 폭발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먼 바다로 돌아온 나는 그것을 바라본 후 눈을 감으면서 ‘깨끗해졌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이상한 하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그리고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시계는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어둔 공간과 빛나는 스마트폰 안에 움직이는 시간을 보았다. 잠시 전의 멋진 BMW와 맑은 바다는 그 칙칙한 섬과 함께 불꽃 속에 사라지고, 나는 우울함과 칙칙함의 쓰라린 가슴이 가장 먼저 느껴지는 현실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20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