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들려오는 말

유난히 잘 들리는 말이 있다. 지하철이든 광장이든 카페든 TV 앞이든 아니면 예배당이든 내 귀에 꽂히듯이 들리는 말과 단어가 있다. 

내 귀는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많은 말들을 늘 듣고 있지만 모든 말들이 내 마음과 생각에 닿지는 못했다. 내 머리 속에서 그 말들을 다 걸러낸 까닭이리라. 하지만 그런 말들 속에  내 마음과 생각에 닿는 말들이 있다. 그 말과 단어는 왜 내 귀에 쉽게 들리는 걸까? 

잠시 생각해 보니 그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말들은 모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이름이다. 때로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말들이 들리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한 이름이다. 내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나의 귀는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보인다.   

내 귀에 들려오는 말들이 그렇다면 내가 말하고자 할 때 누군가의 귀에 잘 들리게 하는 말이 있을거다. 듣는 사람이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그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말이다. 그 말은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누군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 설명이 맘에 안들 때가 있다. 그 설명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뿐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내용일 때 그렇다. 그럴 때는 짜증이 난다. 하지만 계속 귀에 들어 온다. 나에 관련된 말이기에 쉽게 귀를 닫기가 어렵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끄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듣는 사람이 싫어하는 내용이라면 그 사람은 내 말을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더욱 강조하고 계속 그 얘기를 한다면 아마 나조차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을 듣고 말을 하는 과정을 돌이켜 본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말은 없었다.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런 생각은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고 들었던 어린 날의 동화와 같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날 수록 깨닫는다. 모든 이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내 얘기를 듣는 이들은 갈 수록 적어진다.

나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나를 주인공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나와 세상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다른 점이다. 어린이의 동화와 어른의 신화가 다르다. 

말로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바꾸기 쉽지않고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미사여구로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이 아닌다음에야, 솔직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려는 과도한 열정과 목표의식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사기꾼의 말이 가진 위험성과 실용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여럿 있지만 그것은 훗날로 미루자).

이제 아이에서 조금 벗어난 나로서는 말을 하고 듣는 것에 내 자신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꽤 늦게 깨달은 듯 하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고 위로한다. 

사기꾼이 아닌 우리들이 말을 하고 들음에 내 마음과 생각을 늘 돌봐야 한다. 말을 함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정직하고 천박함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의 단점과 척박한 정서조차 이해할 만한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말을 들을 때는 사람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동물수준으로 낮추고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마음에 큰 부담없이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장점과 좋은 점을 발견하는 장점도 있다. 

더하여 말이 주는 기쁨과 중요함이 있지만 그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각과 삶을 나누는 교감의 한 방법일 뿐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말보다 저 좋은 것은 말하기 전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납해주는 그런 친구와 그저 소담스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많이 생각했다. 스쳐가는 말들이 머리속에 들어온 이유를 생각하다가 보니 여기까지 왔다. 처음 시작한 상황과 결론에는 큰 연관이 없다. 상황이 발단이 되었지만 이루어지는 과정과 적용은 생각의 큰 도약이 있었다. 말이 도약이지 합리성과 논리성이 결여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것을 나에게 의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 정신승리는 내게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다. 모든 상황을 내게 유익하게 의미부여해야 한다. 들려오는 소리에 반응하는 나를 이해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는 소리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기 위해서 단순해질 때까지 깊이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 

다시금 주변을 돌아본다. 주변은 여전히 시끄럽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많은 말들이 오고가지만 마음은 정리가 되었다. 글을 써내려가는 동안 주변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집중해서 생각하는 내 자신이 내 모든 것을 이룬 순간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몰입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도 마음도 정리가 끝났으니 다시금 시끄러운 공간의 여유를 즐겨야겠다. 

[상상] 0430 BMW

[일상] 쏘세지가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