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아이는 개학을 했습니다.
개학 첫날 학교에 가서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방학 동안에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고 말이죠.
선생님이 뭘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냐고 물었더니, 아빠하고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고 웃으며 자랑을 하더랍니다.
그 얘기를 전해듣고아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자그마한 행복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살아가는 큰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방학 동안에 학교 숙제만 하고 다른 공부는 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아빠하고 놀기만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방학 동안에 특별한 일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소소한 일상들이었습니다. 매일 아이하고 운동하기, 격투기 하기, 말싸움 하기, 아이패드로 놀기, 밥 먹기, 간식먹기, 차 타고 잠깐 드라이브 하기, 헬리콥터 날리기, 논밭 거닐기, 오락실가서 오락하기, 친척 누나들 놀러와서 며칠간 같이 자며 놀기 등등 정도였습니다. 좀 더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면 엄마가 일하는 중학교로 엄마와 함께 며칠동안 가서 도서관에서 책읽고 다른 선생님들하고 얘기 나눈 정도가 다였습니다. 공통점은 아이가 하기 싫은 것은 거의 없었고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덕분인지 아이는 방학 한달동안 키도 몸무게도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더 안정감이 생기고 의젓해졌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제 자신의 변화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공부시켜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분들이 여럿있습니다. 구구단 3단도 못외우는 아이를 보면서 제 자신도 몇개월 정도 흔들렸는데 아이와 놀고 대화하고 지내다 보니까 그런 걱정이 점점 사라지게 되더군요. 어느덧 아이의 성실함과 열정, 가능성을 믿게 되었고, 그 아이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그런 듯 했습니다.
아이는 아직 구구단 3단을 외우지 못합니다. 공부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시험을 잘 볼 때도 있지만, 여전히 반에서 바닥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다니는 학원인 태권도 학원도 설렁설렁 놀러 다닙니다. 특별히 신체적으로 뛰어난 운동능력을 발휘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마음도 몸도 자라나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됩니다.
요즘은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얘들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놀리던 얘들 얘기를 하며 화가 많이 난다고 했던 아이인데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툭툭 치던 아이에게 화가 나고 열이 받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괜찮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 학교에 갈 일이 있어 갔던 차에 교실 밖에서 아이를 지켜봤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또래아이가 얘기를 하면서 계속 아이 머리를 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예닐곱번을 계속 해서 머리를 치며 얘기를 합니다.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나 봤습니다. 아이가 그 또래에게 뭐라 얘기를 합니다. 아마도 그만하라고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래아이가 또 머리를 치려고 하자, 거꾸로 그 아이 머리를 손으로 잡고 앞뒤로 흔듭니다. 그러자 그 또래 아이가 다른 손으로 아이 머리를 치려고 하자 아이는 그 또래 아이 손을 잡더니 뿌리쳐 버리고 뭐라고 한마디 합니다. 그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책을 계속 읽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어?"라고 묻자, "응, 아무일 없었어"라고 대답을 합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서 물었는데 아이가 대답을 안해줍니다. 결국 집에가서 엄마하고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돌려 돌려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대답해 줍니다. 내용인즉슨 별거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또래아이가 자꾸 머리를 치기에 자기도 머리를 치면서 그만 치라고 얘기를 했다는 것이죠. 그게 다였습니다. 작년처럼 다른 아이의 폭력에 과민반응하거나 분노하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아이는 마음도 몸도 컸습니다.
나와 아이의 문제는 믿음인 듯 합니다. 내가 아이를 믿는 믿음, 그리고 아빠가 자신을 믿고 함께 한다는 아이의 믿음. 그 믿음이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태권도 사범님보다 힘이 세지도 않고 학교 선생님보다 아는것이 더 많지는 않지만, 늘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자기와 함께 싸워 줄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빠는 아이가 모든 것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고 해야 할 것들을 해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개학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기침이 심해서 약을 먹으며 골골하고 있지만, 빨이 낳아서 아빠하고 놀 생각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리고 3학년부터는 영어를 배우는데 요즘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하고 함께 영어공부를 할 생각에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도 나의 삶도, 모든 것이 더디기는 하지만 그것이 느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삶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내 인생에 더불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아이도 나도 분명 더욱 강하고 유연하게 자라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이런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그리고 함께 해주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내게 큰 기쁨과 의미를 주었듯이 언젠가는 나도 어린아이처럼 되어 내 주님과 사람들에게 삶의 작은 기쁨과 의미가 되어주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기도를, 이 깊은 밤 잠시 하늘로 띄워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