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2015년 고난주간 저녁기도회
머리 속에는 생각이 나는데 혀가 굳은 듯 말로 안나올 때가 있습니다. 써 놓은 것을 읽으려고 해도 말이 안나올 때가 있습니다. 천천히 글자를 읽어 내려갈 때도 글자의 뜻을 잃어버리고 말이 안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최근 몇년동안 그랬습니다.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맴돌다가 엉키고, 정리되었던 생각들이 녹아지듯 흘러내립니다. 애써 연설문을 써 놓아도 입으로 소리내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어 중추가, 뇌가 고장이 났다 싶을 정도로 꽤 힘들었습니다. 원인은 알고 있었지만 원인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올 해 2015년 고난주간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생각하고 쓴 것들이 있었지만 막상 말하려고 하고 읽으려고 하니 불빛하나 없이 캄캄한 밤길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깜깜해서 발을 내딛는 곳이 땅인지 허공인지 알 수 없어 어질어질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오래 있다 보니 전에 없이 내 자신의 마음의 감춰진 것들이 더 민감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어버리고 꼬여버리고 녹아버린 내 자아를 보았는데, 그 속에서 다시금 내가 찾아간 근원적인 성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서였고 예수님의 생활이었고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내게는 녹아내리고 늪처럼 가라앉는 삶에서 다시금 무엇인가를 붙들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자 구원이었습니다.
그렇게 허우적대며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냈습니다. 한 해의 끝이 보이는 요즘에 다시금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지난 사순절 기간 고난주간에 했던 기도회입니다. 그 때의 어리숙한 말씀들이 늘 귀에 들리고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내 평생에 남겨질, 어리숙하지만 친근한 말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년 고난주간 저녁 기도회 첫째날.
성전과 무화과 나무, 마태복음 21장 12 ~ 22절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다가 무화과 나무를 보고 열매를 먹으려고 갔지만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매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영원토록 열매를 못맺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무화과나무는 말라 죽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죽은 이유를 묻자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행동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왜 엉뚱한 대답을 하셨을까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2015년 고난주간 저녁 기도회 둘째날.
완전한 지식 완전한 타락, 마가복음 12장 28 ~ 34, 38 ~ 40절
예수님과 당대 종교지도자들간에 논쟁이 시작됩니다. 바리새인 율법사 사두개인 서기관등 여러 종교 계층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러던 중 한 서기관(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첫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모세오경과 구약성서를 통해 가장 으뜸인 하나의 율법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죠.
예수님은 하나의 계명을 대답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만 대답해야 하는데 또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계명을 묻는 질문에, 왜 두개의 계명으로 대답하셨을까요? 그리고 완전한 계명을 갖고 있던 종교인들, 그들은 왜 타락했을까요?
2015년 고난주간 저녁 기도회 세째날.
향유옥합과 기억, 마가복음 14장 1 ~ 11절 / 마태복음 26장 1 – 16절
고난주간 삼일에 예수님은 아무일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몬의 집에서 침묵하며 식사를 하십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붓습니다. 제자들은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지 왜 향유를 낭비하냐고 힐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옹호하며 그녀의 행동이 복음이 있는 곳에 함께 기억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여인은 비싼 향유를 낭비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왜 이 사건과 여인을 기억하라고 했을까요?
2015년 고난주간 저녁 기도회 네째날.
나와 함께, 마태복음 26장 36-46절
고난주간 목요일입니다. 밤이 깊어지면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군병들에게 잡혀가게 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를 합니다.
삶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그 상황을 담담히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힘든 고통의 순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기도를 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2015년 고난주간 저녁 기도회 다섯째날
십자가와 세명의 강도, 마태복음 27장 15 ~ 26절, 누가복음 23장 39~43절
고난주간 금요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지만 군중의 위협에 못이겨 예수를 십자가 사형틀에 넘겨줍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그의 옆에는 함께 못박히기로 결정된 강도 세명이 있었습니다. 예수와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들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수의 이름이 숨겨졌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