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2학년 아들에게 교회 초등 4학년 여자아이가 퀴즈를 냈다.
"보이지 않는데 있는 것은?"
아마도 답은 "공기"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의 답은 달랐다.
아들은 렛잇비 Let it be 노래의 후렴구 한 대목을 개사해서 답을 한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영혼... 안보여도 있어요 모두"
"보이지 않는 데 있는 것?"에 대한 아이의 답이었다.
아이는 두가지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하나는 TV의 개그프로그램이고 하나는 예배의 설교다.
개그콘서트를 거의 한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데 혹시 보게 될 때면, 아이는 "렛잇비" 코너를 정말 좋아했다. 종종 길을 가다가 나와 함께 맘대로 개사해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낄낄 대곤 한다. 개다가 Let it be를 비틀즈의 원곡으로 들려줬는데 노래를 거의 끝까지 듣더니 "노래가 좋다"고 평가를 내린다. 늘 강한 락스타일만 좋아했는데 비틀즈 노래들은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어쟀든 아이는 평소에 즐기고 좋아하던 개그 프로그램과 렛잇비 노래에 가사를 바꾸어 답을 했다.
아이는 또한 예배의 설교에 영향을 받은 듯 싶었다. 최근에 교회학교에서는 성경의 두번째 책인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를 읽어 나가며 얘기를 나고 있다. 특별히 오늘 아침에 읽은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광야로 이끌고 나온 모세가 시내(시나이)산에서 야훼 하나님과 만나는 장면이었다. 불과 연기와 번개와 천둥이 번쩍 번쩍 치는 산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을 정말 눈과 귀를 뚫어지라 집중하며 재미있게 들었던 아이였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과 책상과 이런 보이는 것들과는 달리 형체가 없다고 가르쳐 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도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속에는 작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님은 이런 물질이 아니기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에너지 그 자체도 아니라고 알려줬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본 장면이 성경에 많이 나왔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런 것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이 듣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나름 잘 이해를 해 줬다. 그러니 아이의 머릿 속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지만 "언제나 계신 분"이라는 내용이 머리에 꽉 박힌 것이었다.
더군다나 새벽에 아이가 깰까 싶어 조용히 기도하러 나가다 보면 새벽에 깨어서 어둠 속에서 거실에 앉아있는 아이와 마추친 적이 몇번 있었다. 오늘 새벽도 그러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아빠 하나님께 기도하러가?"라고 말하곤 한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아빠를 보며 아이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의 대답 속에 부처님이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재미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니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 보련다)
무엇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가? 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해본다.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은 "재미와 권위"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아이는 재미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는 권위자에게 영향을 받는다.
아이가 재미있게 여기는 것이 TV나 만화,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노래나 그림이 될 수 도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비슷하지만 아이마다 더 특별하게 나타나는 부분들이 있다. 또 한 아이라도 자라나는 시기에 따라 재미있어 하는 분야나 주제가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아이는 권위자에게 영향을 받는다. 운동을 잘 안하던 아이가 태권도장에 나가더니 태권도 사범님이 매일 줄넘기를 하라는 말을 듣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줄넘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밥 먹을 때면 물을 너무 자주 먹거나 밤 늦은 시각에 잠들 때 뭔가를 많이 먹고 자는 습관이 들어서 약한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을 하는데, 밥 먹을 때 힘들더라도 물을 적게 먹고 잠자기 전에는 적게 먹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는 자신이 존경과 두려움을 갖는 대상에게 영향을 받는다.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은 강한 영향을 끼치지만 자발적이지 못하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아이가 존경을 갖는 대상은 아이에게 자발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재미와 권위, 이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부모는 이 재미와 권위라는 다소 융합되고 공존하기 어려운 역할로 아이 앞에 서있는 존재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재미있는 것을 즐기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누린다. 그리고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아가고 즐기면서 자기 정체성과 독립성을 갖는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살아가면서 부모의 기준과 일관성있는 태도를 보며 권위를 느낀다. 그 권위 속에서 변해가는 자신의 안정감을 찾고 자신이 속한 가정과 삶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재미와 권위 속에서 배우고 익히고 즐긴 것들은 아이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그 아이의 일부가 되고 아이의 특별한 개성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아이가 그 재미와 권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법을 경험하고 시간을 지내며, 어느덧 자기 스스로 재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그런 어른스러움을 가지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기도한다.
요즘 아이는 공부 때문에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몇번 빵점을 맞고 20점을 몇번 맞더니 스스로 충격에 빠져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하다. 부모는 크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 실망한 것 가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충추듯 쓰던 글씨들도 정성들여 쓰고 공들여 숙제를 해가려고 한다. 내 욕심에는 자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재미를 느끼며 스스로에게 권위자가 되는 것을 상상도 해보지만, 그것은 그냥 부모의 환타지일 뿐.아이는 아직 아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자상한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의 눈과 마음에 맞춰서 게임과도 같이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는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다만 아이가 조금 조급해 하고 있으니 그 아이의 마음을 잘 헤어려가며 아이의 수준에 조금더 진일보 함이 있을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할 듯 하다. 재미와 권위를 잃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영향, 재미와 권위". 그냥 두 아이가 장난스레 나눈 퀴즈와 그 대답을 가지고 너무 거창하고 뭔가 깊은 내용이 있는 것처럼 길게 얘기를 쓰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원래 종교인의 습성이 그렇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여러가지 성찰과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은 그런 호기심과 옅은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내 기준에서 종교인들이란, 사소한 것들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나, 반대로 크고 어려운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종의 인생의 겉멋이 들린 부류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긴 글도 실은 종교인의 그저 재미와 권위의 일환이다.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귀차니즘을 핑계로 하지만 실재로는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탓에, 그저 직관적인 관찰과 성찰을 통해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는 주관적인 성찰의 결과일 뿐이다. 소소한 일들에 의미를 두는 재미와 그런 결론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기준과 권위를 부여하려는 그런 작은 인생게임과도 같다 하겠다.
나도 아직 아이와 같이 많은 대화 속에서 나를 드러내고 그리고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 배움이라는 과정 속에서 아이와 나 사이에 있는 30년이 넘는 격차는 단순히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배움의 속도와 내면화에 있어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을 더 앞지른다. 그러니 아이를 나의 삶의 거울과 스승삼아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아이를 보는 것을 재미삼아, 그리고 아이를 내 삶의 권위자로 삼아 살아가는 것 도한 그리 나쁘지 않은, 아버지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삶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재미진 한 주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