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상상] 가족

[상상] 가족

"난 죽어도 엄마처럼은 안될래"라고 큰언니는 소리치며 나갑니다. 

"엄마 미워 죽겠어.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작은언니는 소리치며 나갑니다. 

"엄마 싫어"라고 나는 소리치며 나갑니다.  

엄마는 아무 말 안하고 일하러 나갑니다.  

모두들 뭔가에 쫓기듯이 나가버립니다.  

 

가족은 무덤 앞까지 함께 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죽음을 경험하면, 죽음과도 같은 상황을 경험하면 가족 또한 먼 타인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가족은 내가 평생 이겨내야 할 삶의 무거운 짐인지도, 내가 평생 발을 빼내야 할 깊은 수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같은 삶 속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타인이 되더니, 

이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먼저 돌봐야할 사람들로 하나의 짐으로 옆에 남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 가족은 보금자리요 든든한 후원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 가족은 평생 싸워내야 할 운명의 속박이 됩니다. 

이 세상에 정말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함께 살다가 자기 길을 가던 그들이, 그리 살던 이들이 이제 다시 모입니다.

서로의 삶을 살다가 세상의 죽음과 같은 삶 속에서 지쳐 쓰러졌습니다. 

큰언니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작은언니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언제 봤는지도 모르게 서로 얼굴을 보며 머리를 모읍니다.  

함께 눈물을 흘리고 웃는 것이 가족의 출발입니다. 

그렇게 뒤늦게 가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일까요? 글쎄요 사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말로는 불분명한 그런 감정에 이끌려 

서로 상처입은 가슴을 부빕니다.   

 

아주 어릴 때, 부침개 한쪽을 더 먹으려고 싸우다가 엄마에게 장대가 부러질 때까지 맞던 기억이 납니다. 

맞다가 지치면 엄마는 홧김에 마당에 내던진 부침개를 어느덧 물로 씻어 방으로 가져옵니다. 

넷이 말없이 머리를 대고 부침개를 뜯어 먹습니다.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때문인지 언젠가 내게 부침개가 생기면 그건 내가 먹지 말고

가족들에게 돌려주자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족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내게는 최인호가 쓴 글의 한 자락이 늘 떠나지 않습니다.  

 

"가족이야말로 가장 인내가 요구되는 대상이며, 
가족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과 무조건의 용서가 요구되는 상대이다…
우리가 가정을 통해 진심으로 배워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인 것이다.”
 (최인호, 가족 中에서)

 

적어도 지금 내게 가족은,

찢어버린 부침개라도 다시 흙을 털어 물로 씻어 함께 먹을 수 밖에 없는 피의 속박, 그리고 까슬한 애정.

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김소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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