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상상] 우주여행

눈을 뜨자 눈 앞에 아이패드가 놓여 있다. 아이패드의 사각형이 유난히도 눈에 들어 온다.  화면이 반짝인다. 보석을 나열하는 게임인데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보석들을 조화롭게 맞춘다. 내 앞에는 잘 모르는 여인이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게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확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네모난 아이패드의 까만화면 위로 빛나는 보석조각들이 움직이이고 있었고, 그 위로는 내 갈색 손과 하얀 그녀의 손이 흐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인상깊었다. 

"봐! 여기 화면 왼쪽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쁘게 빛나는 보석같은 것들이 있지? 이게 오른쪽으로 움직이는거야"

내가 말했다. 말이 끝나자 마자 화면 안에 있떤 보석들은 오른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보석들은 처음에는 모두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다가 이내 보서들마다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수만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날아가는 새들같았다. 보석들은 이내 부서지기 쉬운 별빛 덩어리가 되었다. 빛가루를 뿌리며 조금씩 사라지면서 점점 더 빠르게 날아 갔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까만 공간은 어느덧 우주공간을 바뀌었다. 빛덩어리는 빛의 속도에서 점점 더 빨라졌다. 내 생각에 분명 100배 1000배는 더 빨랐을 거다. 빛은 간간히 작은 빛들이 점찍혀 있는 어두운 우주를 관통했다. 

시간은 뒤로 물러가고 인간의 역사 또한 뒤로 지나간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역사의 뒤를 넘어가 오히려 저 먼 미래의 끝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벗어난 것은 시간이며 내가 아는 공간이었다.  우주 전체는 둥그런 큰 원을 이루었고 끝이 보이는 끝없음이었다. 어린 시절 산너머 산이 생각난다. 분명 저 멀리 끝이 보였지만 아무리 걸어가도 끝이 나오지 않았따. 끝이 보이는 끝없음이다.  별빛은 나를 우주의 중심이자 끝으로, 우주이자 우주가 아닌 곳으로 이끌어 갔다.

나는 지구에 있다.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세계다. 나는 영업이 끝난 백화점에 서있다. 백화점의 불은 켜져 있지만, 상점들은 모두 닫혀있다. 나는 백화점 복도에 놓여있는 복사기를 봤다. 복사기에는 전화기가 붙어 있다. 나는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는지 혹은 복사기로 어떤 내용을 인쇄하려 했는지 잘 모르겠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기를 더욱 세게 잡아 당긴다. 전화기 선은 가늘었지만 끊어지지 않고 도리어 큰 복사기가 끌려 온다. 복사기 전원  코드가 끊어지며 불꽃이 튄다. 큰 소리를 들었는지 어디서 직원 몇몇이 달려온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한다.  내가 한 줄 모르나 보다. 조금 불안했지만 ‘ 라리 잘됐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점으로 소멸되어 내 눈동자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우주를 날아 간다. 나도 모르지만 분명히 가는 곳이 있다. 어느 덧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랐다. 푸른 나무와 물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중세의 작은 성과 소박한 마을이 있는 곳이다. 이국적이고 판타지같은 풍경이면서도 주변 산들은 어릴 때 보았던 마을 뒷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성곽 한 쪽에서 돌로 만든 여인을 보인다.  여인은 나체의 조각상이이었는데 몸이 세로로 반이 나뉘어졌고 갈라진 반쪽은 앞뒤로 엇갈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인의 속은 돌이었고 겉은 청동을 입힌 상태다. 나는 순간 정욕으로 휩쌓여 사랑을 구하지만 만족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우주를 날아간다. 권력이 있는 큰 사람을 만나지만 그는 허울만 좋고 교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실망하며 그 곳을 지나간다. 마치 어린왕자가 우주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저 밑으로 작은 사람들이 사는 땅이 보인다. 나는 그곳으로 내려갔다.

그 사람들은 엄지손가락마냥 작았지만 그 중에는 ‘우주의 왕’이 있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그가 나를 이 우주 여행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름은 "존재하되 존재하지않고, 존재하지않되 존재하는, 보이지않되 보여지는, 보여지되 보이지않는 우주의 왕"이다.

그는 우주의 큰, 실은 보통사람이지만 엄지인간들에 비하면 거대한 사람들이 일상에 저지르는 모든 악의를 몸으로 받아 낸다. 보통 사람들의 악의는 작은 나라와 온 우주를 뒤덮곤 했다. 우주의 왕은 그 악의를 몸으로 막아선다. 그는 별빛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보통 사람들의 악의와 사람들에게 부딪힌 그는 부서져버렸다.

하지만 엄지인간들과 나는 그가 사라졌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단지 '신비하다'라고 생각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를 기념하는 빛나는 동그라미가 생겨났다. 

그의 몸과 정신은 원래 온 우주인지라 그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에게로 흩어졌음을 나 또한 알게 되었다. 흩어진 그 빛은 처음 우주여행을 할 때 보았던 어두웠던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던 그 별빛이었다. 그는 늘 거기 있었고 늘 흩어졌고 늘 빛나는 큰 빛이다. 

그는 나를 이끌고 우주의 끝을 가자고했다. 그리곤 우주 끝을 운동장 끝을 돌듯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거대한 원을 그리며 시계 반대방향으로 거꾸로 돌아갔다.  이제껏 날아온 우주여행은 우주의 큰 원의 반바퀴를 돌아 온 것이다. 이제 돌아가는 반바퀴는 시간의 또 다른 반대흐름으로 시간이되 시간이 아닌 또다른 시간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도 아니고 우주의 시간도 아니었다. 또 다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우주의 끝에 나는 우주의 왕과 서 있다. 우주의 끝은 어둠이었지만 두렵지 않다. 끝은 부드러운 친근한 막과 같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듯하고, 우주는 한없이 크지만 작은 알같은 느낌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 너머가 있습니까? 이 너머에 뭐가있습니까?"

그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러한 물음에 어떠한 행동을 한다하더라도 그는 나와 함께 할 것이며 나를 이끌 것이고 나를 지지할 것이다. 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는 내가 움직이길 원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내가 움직이길 원한다. 

나는 그 우주의 끝을 손을 내밀며 밀고 나갔고  내 몸은 그 곳이 마치 나를 빨아들이듯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 갔다. 온 우주는 아주 작은 꽃가루 하나가 되어 꽃 속에서 날아 오른다. 나 또한 우주의 꽃가루에 묻어 꽃 속에서 들판으로 흘러 나온다. 나는 지금 들에 핀 꽃을 내려다보고 있다. 들판엔 풀과 꽃이 가득했고 하늘엔 뭉게 구름이 바람이 소슬하다. 

나는 꽃가루가 된 우주 안에서, 이제 꽃밖에서 꽃가루를 쳐다보며 손을 내미는 나를 볼 수 있다. 이 들판은 어린 시절 들에서 본 그 들판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서 이 글을 적는다.

꿈의 기록. 2010년 11월 19일 새벽 4시

[상상] 화석

[상상] 상상 휴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