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제의 (The ritual)

제의 (The crowd and ritual)

칼 구스타프 융(Jung)은 개인의 무의식에 있던 에너지들은 집단이나 군중이 될 경우에 하나의 인격처럼 그 힘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성과 합리와 질서보다는 광폭한 무의식적인 힘을 표출하는 광전사(베르세르크)가 되는 이미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들이 함께 모여 군중을 이루고 집단을 형성하면, 모든 개개인의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던 짐승들과 괴물들같은 [집합적 인간]의 큰힘이 풀려 난다. 집단 안의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더 낮은 도덕적 지적 수준으로 가라 앉는다. 이 낮은 수준은 의식의 경계선 밑에 항상 존재하며, 집단의 형성으로 자극받자마자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칼 구스타프 융, "심리학과 종교" 중 무의식의 자율성 23에서)

군중의 경험은 가히 종교적인 원초적 경험이기에 폭력과 광기의 형태로 쉽게 바뀔 수 있다. 융은 개인이나 군중의 무의식적인 힘이 질서와 방향성으로 아름답게 승화되기 위해서는 제의가 필요하다 했다. 종교적 제의는 거대한 에너지같은 무의적인 인격에 이성과 합리를 더해준다. 이런 제의는 다분히 전투적인 주술형태가 되어 군중을 광전사로 만들기도 하고, 예술적인 형태로 드러나 군중을 보다 높은 차원의 의식과 질서, 다양성을 표현하는 개성들로 이끌어 낸다.

과거의 제의들이 그 의미를 잘 수행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된 사람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의의 형태를 제안하고 변화하고 평화와 안정을 찾고자 새로운 군중의 형태를 이끌어 낸,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폭력을 쓰지 않고 바리케이트를 형성한 경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폭력적인 충돌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고 군중과 경찰 모두에게 평화를 허락한 법원의 판결 또한 주목할만 하다.

비폭력 만세운동이었던 3.1운동이 생각난다. 초반에 평화운동이었지만 일제의 강제 폭력진압에 3.1운동은 폭력적인 시위로 변화했다고 한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평화로운 군중을 대하는 자세가 군중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는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국민을 대하는 공권력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먼저 평화적인 시위를 주도한 수 많은 이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군중이 달라지는 것처럼 제의의 형태와 색깔도 달라진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만 변해가는 것들도 있다. 변하지 않기위해 변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과거는 존중되고 감싸 안아야하지만 집착이 되면 안된다. 우리들의 삶과 의식 속에는 아름답고 소중한 다양한 것들이 아직 피어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과거의 열정과 진심이 아직 피어나지 않은 제의들에 힘을 주어 새로운 제의를 꽃피운다. 새로운 것은 과거의 것과 다른 것이 아닌 그것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피흘린 희생의 흙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으니 피의 붉은 색과 꽃의 붉은 색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연민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세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제의다. 과거의 기억에 힘을 얻어 다시금 내일을 꿈꾸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꿈을 또다른 기회로 물려줘야 할 때다.

멋진 제의였다. 수 많은 일상의 사제들은 이제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작은 제의를 이루며 꿈을 갖고 살아가고, 직업적인 사제들은 공동의 제의로 형성된 뜻과 힘을 자원삼아 새로운 제의와 사제들을 만들어가야 할 희망과 숙제가 남아있다.

[종교] 보여지는 것과 감추인 것 사이

[일상] 도깨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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