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가을 심방
#가을심방풍경
가을심방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심방이라고 하지만 길어야 2분 정도, 마스크를 쓰고 잠시 성경한구절 읽고 기도하고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이 계신 곳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 문에 엉덩이만 걸터 앉은 채 멀리서 얼굴을 보고 기도하고 나오기도 합니다. 심방은 늘 어렵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은 편했습니다. 짧은 기도였지만 성도님들의 입에서 “아멘. 아멘” 작게 새어 나오는 소리가 정말 간절하게 들렸거든요. 오히려 삼사십분 긴 시간 앉아있으면서 얘기를 듣던 때보다 더 마음이 와닿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번 심방은 내게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심방헌금
아, 심방을 한다고 하면 헌금걷으러 다니는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헌금얘기를 미리 하지도 않고, 헌금을 하라고 미리 심방헌금봉투를 나눠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심방헌금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인에게 감사함이나 간절함이 있는 분들이 헌금을 하십니다. 이런 상황은 교회의 절기도 비슷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중요한 절기가 있지만 그때도 헌금봉투를 나눠드리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봉투를 비치할 뿐입니다. 교인들은 오히려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헌금봉투를 주보에 따로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여러방법을 해보니 헌금을 강조하는 것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큰 상관은 없더군요. 그래도 올해 심방헌금은 예년에 비해서 거의 40%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심방도 안했고, 병자 심방이나 개별 심방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다행히도 교회 운영은 잘 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헌금
목사입장에서는 헌금이 들어오면 교회운영에 있어서 더 좋긴 하지만 그렇지 않다해서 실망하거나 사람을 다르게 보지는 않습니다. 먼저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와 주님이 의롭게 여기는 것을 구하면 다른 것들은 주님께서 다 채워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과도하지 않은 사례비와 교회 운영만 될 정도의 헌금이면 충분합니다. 다른 교회나 이웃을 도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더 좋은 것이고요. 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헷갈리지는 않는 지혜가 내게 필요합니다.
#전봇대
아침 안개 자욱한 동네 이곳 저곳에 장승처럼 서있는 전봇대와 중계기를 보면서 또 하루치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들은 묵묵히 자리 자리를 지키면서 전기를 보내기도 하고 여러가지 신호도 전달해 줍니다. 전도사 때는 신앙의 겉멋이 많이 들어서였는지, 주님이 원하시면 전봇대같이 묵묵히 선채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못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박혀있는 주님의 도구가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만 목사가 되고나서부터 다른 것들을 많이 바라보며 세상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살았습니다. 어느순간 잊고있던 부끄러움과 수치가 몰려들어 뒤늦게 마음을 고쳐 먹었는데 지금도 내 살아온 삶에 부끄러워 한숨과 탄식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전봇대들이 내게 부끄럼을 가르쳐 주는 십자가요 선지자처럼 보입니다.
#가을끝
심방이 마치면 추수감사주일이 오고 김장을 준비하며 겨울을 맞이합니다. 코로나가 닥쳐올 때는 언제 올해가 지나가나 손꼽았는데 벌써 한해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살짝 답답합니다. 그래도 몇 달 전과는 달리 정신을 많이 차렸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요.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듯이 삶에도 사회에도 겨울과 같은 때가 온다는 것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IMF 때 이후로 네번째 겪는 어려움의 시기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고맙고 감사한 가을입니다. 목회와 삶을 대하는 마음이 전보다는 티끌만큼이나 조금 깊어진 듯 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가끔은 내가 전봇대를 닮은 것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내 마음과 삶을 통해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지키려는 의지도 더 강해졌습니다. 한참 이전의 나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얼마전의 나보다는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세상은 겨울로 들어가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음은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선 듯 합니다. 희망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오전에 심방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니 어느새 안개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짙은 아침안개도 태양이 뜨고 나니 금새 사라집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전도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슬퍼할 때도 있고 즐거워할 때도 있고. 분명한 것은, 이제 계절이 모든 것을 벗어 던지는 가을의 끝으로 가고 있으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의 영혼의 계절도 바다와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은 겸허함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제, 가을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