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어머니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도 얼굴에 뭐 좀 바르고 옷도 이쁘게 입어라."

왜요? 라고 되물었다.


어머니 말씀이

"우리 교회 목사님들은 얼굴도 하얗고 옷도 양복이 깔끔한데,

  너는 얼굴이 그렇게 까맣고 옷도 그런데, 성도들이 안좋아해"


어머니 저는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잖아요.

밖에서 일을 할 때가 많으니 얼굴이 까매진게 당연하고요

옷도 일을 많이 하다보니 허름한거고요.

그래도, 세수도 잘하고 예배 때는 깨끗하게 입고 예배 드려요.


어머니 왈,

"그러냐? 유튜브에 다른 목사님들 봐도 다 깨끗하고 얼굴이 하얗던데.

  그럼 됐다.

  그래도 얼굴이 너무 까매졌어"

어머니는 늘 자식이 염려스럽고

다른 사람들 눈에 나쁘게 보일까 근심하신다.

나도 낼모레면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

어머니 눈 앞에는 하얀 얼굴에 깡말랐던 중학생 아이가 있는 듯 하다.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고, 그리고 죄송스럽다.

불효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요, 성모 마리아는 아니더라도 자식을 끝없이 용서하시는 어머니의 사랑때문일 것이다.

"God could not be everywhere,

and therefore he made mothers."

"하나님이 어느 곳에서나 계실 수는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말이 생각난다. 신학적으로야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계시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물리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늘 변함없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주는 어머니가 있기에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를 배우고 그 사랑의 정수인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듯 하다. 물론 어떤 어미들은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평생 건강하실 것만 같던 분이 아파하시고 힘이 빠진 것을 보면서, 목회한다며 효도하지 못하고 끝까지 걱정만 끼쳐드리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씩은 전화드리고 격주로라도 찾아뵈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좀 더 많이 어머니와 대화하고 싶고 옛날 일들도 듣고 싶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준 분이기에 더욱 그러고 싶다. 그리고 나또한 어머니처럼, 내 아이에게 어머니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나는 까매졌고, 어머니는 쪼그매 지셨고

나는 부끄럽고, 어머니는 여전히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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