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상상] "성공적인 목회를 위한 세속적인 지혜" 중에서

[상상] "성공적인 목회를 위한 세속적인 지혜" 중에서

세속의 지혜를 통달한 지혜자가 감히 말합니다.

"교인에게 좋은 이미지와 평판을 얻으려면 말씀을 올곧게 전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말씀은 교단이나 교회에서 자신의 권위가 완전하게 인정받은 뒤에나, 혹은 나를 충실히 따르는 유력자들이 많이 있을 때야 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도 있고 은혜도 됩니다.

목사가 주님의 말씀을 올곧게 전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말씀 중에 교인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말씀이 있는 경우에는 교인이 싫어하고 장로님이 언짢아하거나 따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의 지도력 자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설교가 의도치 않게 직접적으로 다른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의 잘못을 드러나게 하는 경우라면 그 또한 큰 부담이 될 겁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른 교회로 임지를 옮기게 될 때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들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라 내 잘못을 드러내는 올곧은 사람보다는 조금 삐뚤어져도 내게 유익을 주고 화기애애함을 주는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평안한 목회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성도나 다른 목회자가 주님의 말씀과 다르게 산다 할지라도 그냥 못 본 체하십시오. 내가 말씀의 뜻을 잘 못 봤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이 나보다 더 똑똑하면 똑똑했지 나보다 못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면 성도나 목회자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연관된 죄를 지적하는 것은 영적인 교만, 세상의 말로 쓸데없는 간섭 곧 오지랖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사는 사람 앞에서도 설교에 있어서도 스스로 겸손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목사는 말씀을 강조하고 은혜를 말하면서도 죄에 대해서는 감성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설교하며, 교인이나 동료 목사의 죄는 융통성 있게 피해 갈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도 사회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매사에 성도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긍정적이며 축복이 있는 구원의 말씀에 전념합니다.

  이것이 평안하고 편안하고 은혜가 되는 목회의 왕도이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주라는 황금률, 주님의 말씀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감히 권고합니다. 목사라면 긍정적인 말 좋은 말을 하십시오. 남에게 받고 싶은 대로 행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사는 법칙이며 사람 사는 사회의 기본입니다. 더욱더 축복과 은혜를 말하며 성도를 위로하며 장로님과 목사님들을 세우며 그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함께 소중한 마음을 표할 줄 아는 지혜롭고 신실한 목사가 되기를 소망하십시오."

세속의 지혜를 통달한 지혜자가 감히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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