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잠언”의 생명나무
잠언에서 '생명나무'라는 표현은 총 4번 등장한다. 3장 18절(지혜 자체를 생명나무로 의인화)을 제외한 나머지 세 구절(잠 11:30, 13:12, 15:4)은 지혜가 인간의 일상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1. 잠언 11:30 — 의인의 삶이 맺는 열매로서의 생명나무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개역개정) "의인이 받는 열매는 생명의 나무요,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새번역)
-히브리어 원문 및 직역
원문: פְּרִי־צַדִּיק עֵץ חַיִּים וְלֹקֵחַ נְפָשֹׁות חָכָם׃
읽기: P'ri-tsaddiq ets chayyim, v'loqeach n'fashot chakham.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요, 지혜로운 자는 사람들의 생명(네페쉬)을 취하느니라(이끄느니라)."
- 문맥 및 지혜문학적 분석
'의인(tsaddiq)'은 '지혜로운 자(chakham)'와 연결되고,
'의인의 열매(생명나무)'는 '사람을 얻는 것'과 짝을 이룬다.
의로운 사람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생명나무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만, 열매가 나무를 만든다. 밀알의 수 많은 낱알 중 하나가 땅에 떨어지지만, 그 열매가 다시금 수 십개의 밀알을 만들어 낸다.
생명나무는 실재적인 생명의 능력을 그려낸다. 생명이 머무는 곳, 생명을 주는 곳이다. 그늘을 주고, 열매를 준다. 땔감이 되기도 하고, 집이 되기도 하고, 배가 되기도 한다.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 나무는 생명이다.
이와같이,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 여기서 "사람"은 "이쉬"도 아니고 "아담"도 아니다. "네파숏", "호흡들, 생명들"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존재들이다. 단지 사람들을 얻는다는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얻는다는 생명의 능력을 떠오르게 한다. ('떠오르게 한다'고 부드럽게 말한 이유는, 이것은 하나의 그럴듯한 의미 부여이기 때문이다)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새번역과 개역개정의 후반절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의인이 받는 열매는 생명의 나무요,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새번역). 개역개정은 "지혜로운 자가 사람을 얻는다"이고, 새번역은 "폭력을 쓰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이다. 개역개정은 히브리어 성경 맛소라 본문의 영향을 받아 그 의미를 그대로 해석했고, 새번역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이 아닌 70인역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70인역 헬라어 본문은 "아마도" 지혜로운 자(하캄, חָכָם)'을 '폭력(하마스, חָמָס)'로 읽었던 듯 싶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기록되지 않고 자음만 기록이 되었고, 자음도 비슷한 모양들은 오독을 해서 잘못 해석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이부분에서 맛소라 본문의 해석을 따랐다.
2. 잠언 13:12 — 소망의 성취로서의 생명나무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개역개정)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병들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면 생명나무를 얻는다."(새번역)
- 히브리어 원문 및 직역
원문: תּוֹחֶלֶת מְמֻשָּׁכָה מַחֲלָה־לֵב וְעֵץ חַיִּים תַּאֲוָה בָאָה׃
읽기 : Tochelet m'mushakhah machalah-lev, v'ets chayyim ta'avah va'ah.
"지연되는 소망은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찾아온(성취된) 소원은 생명나무니라."
- 문맥 및 지혜문학적 분석
잠언은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소망이 길어지고 지연될 때 마음(레브)이 '병든다(machalah)'. 바라던 소원이 마침내 도달할 때(바아, בָּאָה), 죽어가던 마음을 소생시키는 '생명나무'가 된다.
3. 잠언 15:4 — 치유하는 언어로서의 생명나무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개역개정)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새번역)
-히브리어 원문 및 직역
원문: מַרְפֵּא לָשֹׁון עֵץ חַיִּים וְסֶלֶף בָּהּ שֶׁבֶר בְּרוּחַ׃
읽기:Marpe lashon ets chayyim, v'selef bah shever b'ruach.
"치유하는 혀는 생명나무이나, 그 안의 비뚤어짐(패역)은 영을 부서뜨리느니라."
- 문맥 및 지혜문학적 분석
개역개정은 '온순한 혀'로 새번역은 "따듯한 말"로 번역했다. 원어로는 '치유하는 혀(Marpe lashon)'정도로 읽을 수 있다. 말에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 바른 언어는 그 자체로 에덴의 생명나무 열매와 같다.
잠언 4장 23-24절에서 "마음을 지키기 위해 구부러진 말을 입술에서 멀리하라"고 했던 지침과 연결된다. 비뚤어진 말(selef)은 상대방의 영(ruach)을 '산산조각(shever)' 내지만, 지혜로운 언어는 생명을 공급한다.
잠언의 생명나무
잠언 전체에서 '생명나무(עֵץ חַיִּים)'는 지혜로운 삶의 열매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미지다. 3:18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창세기 에덴의 생명나무를 연상하게 하고, 참 지식과 지혜, 생명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잠 3:18 (존재): 지혜의 본질 자체가 곧 생명나무이다. (주님을 경외 = 생명의 근원)
잠 11:30 (사회): 지혜를 가진 자(의인)의 삶은 타인을 살리는 생명나무가 된다.
잠 13:12 (실존): 인내의 시간을 지나 약속이 성취될 때 생명나무를 경험한다.
잠 15:4 (언어): 일상에서 지혜를 전하는 '치유의 언어'가 곧 생명나무이다.
잠언에서 생명나무는 에덴 동산에 있던 나무가 아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지혜자가 악과 선이 대치하고 섞여있는 혼돈한 세상의 일상에서 바르게 분별하고(3장), 의롭게 살아가며(11장), 인내하여 성취하고(13장), 치유의 말을 건내는(15장), 실재 삶이 된다. 인간은 에덴 동산을 떠나야 했고 돌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 또한 에덴 동산 안에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에 함께 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그 시간과 삶이 바로 새로운 에덴의 삶이요, 지혜자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