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걀의 온기 (김혜진, 창비)
오랫만에 아무 일도 없는 월요일, 오전 내내 잠으로 시간을 보내고 아침과 점심은 아침에 아내가 해놓은 계란 후라이 하나와 쥬스 하나로 해결했다.
정오가 되어 창가에 앉아 유튜브를 틀어 놓고, 20분 만에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몇 편 보다가 지난 주에 서점에 가서 산 책을 펼쳤다.
김혜진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달걀의 온기”
내용과 문체는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세밀하게 전해주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책의 처음을 시작하는 소설이 그러한 종류였다. 주인공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내용이어서인지 감정 소모가 컸다. 책을 덮었다.
오후 서너시가 넘어서 다시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 부분은 저녁에 한시간 정도를 읽었다. 마지막 단편소설을 ”달걀의 온기“로 구성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같다. 일종의 판타지같은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애써 읽은, 기록을 남긴다.
관종들
모두가 이상하다. 너무 몰려 살아서 그런 것이고 너무 이기적이서 그런 것이다. 빌라 계단에 적재된 화분들과 무너질 듯 쌓아 올린 물건과 옥상에 가득한 가구들, 할머니에게 이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개를 풀어 놓고도 아무 문제 없다고 고개를 쳐드는 사람들. 무례함이 왕노릇하는 시대다. 무례함과 불안에 대처하는 섬세한 이들이 핍박받는 시대다. 막연한 타인들 사이에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빈티지 엽서
'우리는 소문이다.' 어느 시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진실 또한 소문이다. 소문으로 진실을 만들어 사람을 죽인다. 너에게도 나는, 너의 소문이었을 뿐이다. 순수함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시대지만, 있다. 진실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그런 이들은 핍박받는다. 그런 순수한 만남이 있을까?
푸른색 루비콘
타인에게 느끼는 불편함과 무례함은 그들에 관한 절대적인 가치판단이 될 수 없다. 배려받지 못함에서 오는 불편함과 무례함 너머에, 오히려 받아들여질만한 나의 또 다른 세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루치의 말
적정의 기대치를 갖고 만나고 대화하며 헤어지는 마음가짐이야 말로 현대인이 가져야할 마음의 기술이다. 마음의 밑바닥을 다 던지며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런 생각 자체가 유치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패한 관계와 사건을 삶의 의미로 바꿀 수 있을까?
우연의 직조
아무나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수치스런 나와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 앞에 구현시키는 사람. 가장 인간적인 부류같으면서도 가장 관조적인 부류. 창조의 진실성은 작가 스스로도 모를 것 같다. 실패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의 전문분야, 그렇다면 남은 것은 창조. 나의 삶에도 창조의 순간이 다가오는 우연이 있었는가?
우리와 우리 아닌 것
무슨 얘기인지 모를 정도로, 흔하게 많이 듣던 얘기다. 비슷한 것들의 반복은 짧은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구조인가 보다.
달걀의 온기
시골에 남아 있던, 과거에 있던. 다른 것이 있을 때는 귀찮게 느껴지던. 다른 것들이 식상해지고 관계에 지쳤을 때 생각나던. "정"이라는 것. 이 소설이 책의 가장 처음에 있었더라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