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n 상상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흙과 풀과 나무가 보이곤 합니다. 커텐을 치면 밖의 풍경들을 모두 사라지고 캄캄한 방이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밖의 풍경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면 내가 원치않는 그런 것들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초등학교 때 그렸던 지구 그림이 생각나.  우주로 뿌리를 내리고 지구가 열매가 되는 우주 나무였지. 사람들은 그 나무의 열매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어. 이른바 거꾸로 자라는 나무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다른 나라의 신화와 종교를 보다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똑같이 써있더라는 거야.

우울 속으로 빠져든 사람은 과거만을 단순히 반복해서 생각한다. 거기에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끼어들 빈틈이 없다. 내일은 우울이라는 철벽에 막혀 있고, 현재는 내일로 나가지 못한 채 내 안으로 깊이 깊이 파고들어가 그 구덩이에 과거만을 가득 채울 뿐이다. 채워진 과거에는 이야기 없다. 질척이는 감정과 어두운 그림들만이 과거의 전부다. 

나는 시간들을 모두 균일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찰라같은 고통 또는 기쁨의 점들이 엉성하게 찍힌 얇고 하얀 무명천과같다. 나는 점과 점을 이어가며 뭉툭한 연필로 선을 긋는다. '자. 이제 모든 것들은 연결되었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