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in 일상

오래된 곳에 발을 디딜 때면 내 마음과 몸도 그곳에 연결되는 그 느낌이 좋다. 차갑고도 투명한 깊은 시간의 호수 물에 내 자신을 비춰 보는 느낌이다. 자연과 역사의 오랜 깊음과 기품을 경험하는 기쁨이다. 융건릉에서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국교회는 한국의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해석하곤 했다. 더하여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연결 시키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조선시대는 이집트의 종살이하던 우상의 시대, 일제시대는 하나님의 연단의 시기인 광야시대, 그 후로 6.25는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를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그런 도식을 펼치기도 한다. 

이 후의 아담은 신의 신비로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근본된 흙을 갈고 그 속에서 살다가 다시 그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을 지닌 존재의 대명사가 된다.  히브리 성경 창세기의 이런 이야기는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삶이지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움을 가진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라는 의미는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