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2015.7.9
아담.
그대는 제 6일에 태어나고
제7요일에 쉼을 가졌지만,
나는
제7요일의 쉼을 맛보지 못하고
제6요일에 스스로 죽어야만 했다.
아담.
너와 나의 날이 다르니
더 이상 네 수고와 노고를
내게 넘겨주지 말라.
나는
제8요일 오늘 세상에 혼자 있다.
그대와 나의 날이 다르니
더 이상 그대의 수고와 노고를
내게 넘겨주지 말라.
"아담"은 히브리말로 "사람"이란 뜻으로 "흙"이라는 뜻의 "아다마"에서 나온 말이다. 성경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신이 사람을 만든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 라고 되어 있는데, 거기서 "흙"이 히브리어로 "아다마"고 "사람"이 “아담"이다.
사진은 오래 전 복사본으로 산 “ 낙"이다. 타낙은 유대인의 성경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로 타낙은 일반적인 기독교인의 구약성경과 순서도 조금 다르고 번역도 조금 다르기에 유대교의 말 그대로 타낙이라고 부르곤 한다.
사진에서 형광펜으로 칠한 부분이 창세기 2장 7절의 한부분인데, 고대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기 때문에 오른쪽에 나온 단어가 "아담"이고 왼쪽에 나온 단어가 “아다마”이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하아담"과 "하아다마”다. 배운지 하도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는 영어의 정관사 "the"와 비슷한 용법이라고 했던가.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 "아다마"가 여성형이라는 점이다. 마치 땅이 엄마의 몸이고 흙이 엄마의 살과 자궁같아서 거기서 "아담"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2장 1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물들도 흙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같은 흙에서 사람도 나오고 짐승도 나왔다는 거죠.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떤 이는 이 창조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사실의 역사로 믿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비유로 받아들이며 그 의미를 믿지만, 어찌되었든지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람과 짐승이 같은 흙에서 나왔다는 것에서 같은 근원을 가진다는 의미인데, 성경은 사람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성경 2장 7절의 후반은 "...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사람)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생물)이 되니라"고 되어있다. 흙이라는 유형의 질료에서 사람이 나왔지만 신의 숨결을 그 사람에게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신의 숨결이 있기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히브리 성경의 독특한 인간관으로 보인다.
이 후의 아담은 신의 신비로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근본된 흙을 갈고 그 속에서 살다가 다시 그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을 지닌 존재의 대명사가 된다. 히브리 성경 창세기의 이런 이야기는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삶이지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움을 가진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라는 의미는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때로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기도 하지만, 수고와 슬픔의 땅에서 새로운 삶과 역사를 일궈나갈 용기와 희망을 지닌 창조의 힘을 가진 자 또한 사람인 듯 싶다.
그 때 아담은 신이 만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리고 이 세상이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종종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몸과 영혼이 가뭄에 바스러져 가는 마른 흙과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든 아다마와 아담의 이야기를 되새긴다.
비록 나는 지금 고개를 숙인 채 마른 땅, 부서진 흙으로 이어진 광야를 걷고 있지만, 그 때 불어 넣었던 신의 숨결의 흔적이 지금 내 속에 있음을 기억하고 다시금 하늘을 보고 그리고 저 먼 곳을 바라본다. 언젠가 내 살도 흙으로 부서지고 그 신의 숨결은 다시금 신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나의 삶 중 한 호흡이라도 그 신의 숨결에 묻어 나도 모르는 나의 이상향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지금 여기를 걷고 있으니, 길게 한 호흡 내쉬며 나보다 앞선 신의 숨겨을 따라 다시금 용기있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여기까지... 잘 왔어. 한 걸음씩 더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