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종교] 예언 혹은 수다

'오래 전 언젠가' 일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사님이 말한대로 똑같이 되어버렸어요. 정말."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가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어버렸나봐요."
울며 두려워한다.

그래서 수화기에 대고 얘기해 줬다. 
"내가 기도해 봤는데 님 죄때문이 아닙니다"

수화기에서 다시 소리가 들린다. 
"아니요.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는 작은 일에도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연약한 심정을 가진 사람이다. 교회와의 문제, 목회자와의 문제, 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한다. 내가 볼 때는 그 사람의 주변이 문제지 그 사람 자체의 문제는 크게 없어 보였다. 부모는 모질었고 교회나 목회자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수화기에 대고 얘기한다. 
"내 마음에 드는 생각이, 당신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연단시키시려고 그러시는 듯 합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진다.
"정말... 그런걸까요? 저는 자꾸 제가 잘못한 것만 생각이 나요"

다소 낮은 소리로, 교리적인 권고를 해준다. 
"잘못한게 생각난다는건 좋은 일이죠. 자기성찰을 할 수 있고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답니다. 하지만 자꾸 자기 죄만 생각하는건 교만한거죠. 은혜와 희망을 바라보세요. 십자가만 바라보세요. 잘못한거 나쁜 생각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같이 못박혔다 생각하세요"

다행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다. 
"목사님 얘기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목사님 말씀대로 되었으니까요. 앞으로도 그 말씀대로 되겠죠?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대화의 내용을 돌려서 결국 그 문제와는 다른 일들로 1시간 정도를 웃고 떠들고 얘기를 마무리 했다.

"목사님 하고 얘기해서 좋았어요. 감사해요. 
바쁘신데 오래 전화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목사님이 계셔서 다행이예요. 
목사님한테는 이런저런 아무 얘기나 해도 다 받아주셔서 좋아요"

꽤 밝아진 목소리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 사람은 결국 얘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기 사정 속 얘기를 한없이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예언자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수다떨고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시간이 수개월이 지나 오늘 다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사님이 말한대로 똑같이 되어버렸어요. 정말."
울먹이며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내용이 심각하다. 
'이 사람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 걸까요? 하나님' 속으로 생각이 나며 한숨이 나온다.

그러면서 수화기에 말을 한다. 
"저런... 힘드시겠어요. 그래요 한번 얘기해 보세요"
그리곤 전과 같이 1시간 정도 전화가 이어진다. 
역시 한풀이를 하고 수다를 떨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다행인 것은 상황은 전과 비슷하지만
마음과 생각은 전보다 더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계에는 예지몽 혹은 예언자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간혹있고, 자신의 말이 신이 준 영감과 예언과 같다는 애매모호한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나는 그런 기적적인 능력을 확실하게 발휘한 사람을 한 두명 기억한다. 십수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은 무성히 듣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

예언이나 예지몽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말한 것 중에서 맞았던 것만 기억을 한다. 
애매모호한 말들은 확실하게 예언을 한 듯 기억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도 자기 자신이 굉장한 영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에 대한 추호의 거짓됨도 없이 순수하게 그렇게 믿는다.

솔직히, 정말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런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런 순수함이 차리리 부럽기도하다.

반대로, 예언을 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예언자적인 권위를 두고 귀기울여 듣는 사람도 있다.

이들도 비슷하다. 
틀린 것은 잘 잊어버린다. 맞는 것만 크게 기억한다. 
애매모호한 말들도 확실하게 재구성해서 기억을 재구성한다.

내 경우에는 후자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후광효과 때문에 나를 그렇게 보는 것이다. 세상은 발전하고 교육수준도 높아졌지만 종교의 틀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조금 달라진다. 그런 달라짐이 싫어서 종교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그 안으로 들어오면 그 달라진 이상함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버린다. 그래서 나는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닌데도 나를 그렇게 보고 그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비자들이 있으니까 생산자가 생긴다는 고전적인 경제이론이 떠오르고 수긍되는 부분이다. 아직 신기한 능력을 찾아 다니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을 말로 호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그런 능력이 없는 내가 어리게 보이긴 하겠지만. 물론 나도 그런게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판타지일 뿐, 현실은 지식도 사회적인 능력도 부족한 종교인일 뿐이다.

그래도 요즘 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한 예언의 능력은 없고 설교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수다는 잘 떨 수 있어서다. 종교적으로 신묘막측한 예언이든 수다든 그 무엇이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더불어 사람을 살리고 온전히 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하는 능력과 사랑이 중요한 것 같다. 사랑과 능력이 없다면 성경에 나오는 말과 같이 시끄럽게 울리는 징과 꽹과리와 같이 아무 소용없고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테니까 말이다.

원래 수다떠는 걸 좋아하는데 수다 떨 대상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원래 마당 앞에 있는 단풍나무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비가 내려서 얘기도 잘 못하니 조금 수다에 욕구불만이 쌓인 듯 하여, 이렇게 온라인에 수다떨듯 이야기를 남긴다. 물론 나는 침묵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수다가 재밌다.

하지만 내일 교회당에 오는 사람들은 수다가 아니라 예언을 원할테니... 다소 실수가 많아도 재미가 되는 수다스런 마음은 찢어놓고, 성경 속의 무거운 말들을 마음에 올려놓아 무거운 마음을 만들어야 겠다. 내적인 성소에서 나만의 은밀한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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