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선물

선물은 즐겁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하다. 더하여 생각지 못했던 선물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해줘서 억눌렸던 욕망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선물을 선택할 열쇠를 손에 쥐어졌다. 열쇠는 지나치게 무겁다. 당혹스러움과 부담이다. 선물이 주어졌다면 부담과 당혹스러움의 시간은 짧게 지나가고 그 감정들은 온전히 고마움과 의미의 감정들로 무게감있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열쇠는 그 시간을 길고 무겁게 만들어 버렸다.

무거움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문을 연다. 열쇠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적당한 문들을 찾아 열어야 했따. 하지만 새로운 문들을 열어 보았을 때 거기 펼쳐진 것은 새로운 선물들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바로 사람과 남자들에게 내재된 욕망의 세계였다. 무지함은 사람을 선하고 착하게 만든다. 무지하고 온순하게 미친 사람은 착하고 바보같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은 사람을 지혜롭게도 하지만, 그를 약삭빠르게 만들고 욕망에 충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것들은 호기심과 찬양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소유와 쾌락의 욕망이 되기도 한다.

순수한 목적은 욕망을 넘어서며 차가운 불길을 따스한 온기로 만드는 힘이 있다. 열쇠의 처음 온기는 흔들리는 눈과 손을 잠잠하게 만들어 준다. 새로운 세계를 욕망이 아닌 아름다움과 가치로 바라 볼 수 있는 따듯한 지성을 허락한다. 감정과 욕망의 열기가 호기심과 가치의 눈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선물이 들어있는 문을 열 수 있는 때다.

주어진 선물은 감사와 그것에 대한 의미만을 가지면 되지만, 선물을 고를 열쇠를 받는다면 단지 감사와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능동적으로 선택하며 감사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기에 그러하다. 특별한 의미 이상의 특별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든다.

모두가 다 끄덕일 수 특별함이지만 나또한 끄덕일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무거워야 하고 튼튼해야 하며, 30분이라는 스피치 시간을 상징할 수 있어야 하고, 밤에 몇번씩이나 눈을 뜨면서 새벽기도 시간을 확인하거나 집회중 불이 꺼진 상황에서 시간을 가끔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전혀 비실용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열쇠 안에서 열수있는 선물이어야 한다.

결국 몇 주를 보며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해 줄 선물을 준비했다. 내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맘에 드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통해서 모르던 세계와 감성도 알게 되었다. 세계는 참 넓고 물건은 많고 사람들의 삶도 다양했다. 낯설지만 드러난 감춰진 소유욕과 가치에 대한 탐욕은 또한 내 안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금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덕분에 왼손에 조금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고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깨닫고 보게하고 알게 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의 무거움을 알게 해준 선물에 ...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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