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종교] 경외감

경외라는 말이있다. 독일의 신학자인 루돌프오토는 이 누미노제라는 말로 이 경외를 표현한다. "두렵고 매력적인 경험"이 바로 경외라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던지 간에 이 경외감은 모든 종교의 출발이 된다. 두려움만이 아니라 매력적이어야 한다. 두려움은 엎드려지고 눈을 감게 만들고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매력은 일어나게 하고 눈을 뜨게 하고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종교체험은 이 누미노제의 경험이다. 두려움과 매력.

이런 종교체험과 유사한 체험이 바로 예술적 체험이다. 하나의 작품 앞에서 자신과 세계가 몰락하고 멸망당하고 해체되는 두려움, 그렇지만 그 속에서 또 다시 재구성되고 재창조되고 재해석되는 것의 매력이 이어진다.

모든 작품들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고 모든 종교적 형태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이 누미노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특별한 힘을 발산하곤 하는데 그것을 "카리스마"라 하고 카리스마가 풍겨나는 것을 독특한 아우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세상은 호기심과 재미의 대상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세상이 모든 것들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서만 머물게 된다면 아이는 그 대상에 대해 회피하거나 억압하거나 다른 형태로 망상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바람직한 관계는 두려움을 느낄만한 권위를 가진 대상에게 매력도 함께 느끼는 관계일 것이다.    

자연은 그러한 좋은 예가 된다. 자연은 두렵고 무섭지만 무한한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한결같고 깊고 크고 강하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섬세하고 변함없다. 기쁠때는 기쁘게 나를 맞아주고 슬플 때는 슬프게 나를 맞아준다. 사심이 없이 나를 대해준다.

바다로부터 배운다. 예닐곱살에 어딘지 모를 부산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나가 깊은 물을 보고 느낀 두려움, 그리고 20여전전 바다를 가서 느낀 그 푸르름, 10여년 전에 바다를 가서 들은 소리와 자유로움. 모든 것들이 내게 무언의 교훈과 체험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바다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그 앞에 앉아 있다. 아이는 무엇을 느낄까. 궁금하다. 그 아이가 느끼는 것들이 궁금하다. "느낌이 어때?". 그냥 침묵하면 좋으련만 옅디 얕은 아빠는 굳이 그 느낌을 말로 물어본다. 아이는 대답이 없고 그냥 한번 웃는다. 아빠보다 나은 듯 하다. 섣불리 경외감을 말로 표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가슴과 머리속에 살아 움직인다. 그저 보고 듣고 느낀 그 누민노제를 가슴에 담고 살다보면 삶의 어느 순간 두렵고 매혹적인 것들이 나를 억누르고 흔들어 버릴 때 그 바다가 가슴에서 머리에서 튀어나와 다른 모든 얕은 두려움과 매혹들을 쓸어가 버릴 것이다.

바다에서 돌아온지 몇주가 지났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아이에게나 내게도 무언의 소리와 그림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여전히 눈과 귀를 흔들어 마음과 삶을 혼란시키는 것들이 주변에 펼쳐지지만, 잠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때의 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아이인지 나인지 모를 한 아이가 그 바다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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