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포도나무

뒤편 언덕에 있다. 주렁주렁 열렸던 포도들은 진즉 농부 손에 따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갔다. 남은 것은 겨울을 나기위한 앙상한 가지와 한 때 내게도 있었을 주렁주렁 열렸을 포도알을 상상하게 만드는 종이봉투 뿐이다. 

포도열매가 아무리 멋지고 탐스럽고 맛도 좋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니다. 나로부터 나온 나의 일부이지만 내 전부가 아니다. 여름이 지나고 포도알이 떠나가니 새들이 날아와 앉아도 농부는 새를 쫓지 않는다. 아니 포도나무에게도 포도나무가지에게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도를 원하지 포도나무를 원하지 않는다. 농부는 열매가 열리는 포도나무를 원하지 열매없는 포도나무를 원하지는 않는다. 포도열매가 그치자 사람들의 관심도 그쳤다.  

하지만 빛나는 흙보라빛 포도알이 사라진, 사람들의 무관심이 일상인 이 생활이 좋다. 과거의 기억들이 얹혀진 종이 봉투의 추레한 모습에, 사람들의 무관심과 일상에 존재하지 않게 있는 지금이 좋다. 구겨지고 늘어진 종이봉투는 흡사 수의와 같다.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이제는 앙상해진 몸을 풍성히 덮어 놓은 누런 수의같다. 잊혀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잊혀지기 전에 잊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죽음이 이르기 전에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좋고, 열매를 풍성히 맺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생각해 보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처음 흙에 심겨지고 자라날 때의 충만함이 소중하다. 사람들과 열매 이전에 있던 나만의 모습을 기억하고 과거의 생명의 씨앗을 지금 내 가슴에 심는 것이 위로가 된다. 잊혀지고 버려지는 것에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가슴 속 언덕 위에 나조차 잊어버린 내 모습을 다시금 심어야 한다. 나만이 보고 즐거워 하는 나만의 열매를 가꾸어야 할 때다. 

다가올 겨울을 기다린다. 하늘은 자주 회색빛이 되고 바람은 차가워진다. 비어있는 가지와 가지사이로 바람이 자유롭게 다닌다. 무엇인가 많이 붙어있을 때는 나를 지나치던 바람이 이제는 내 가슴 속으로 불어 온다. 차가운 만큼이나 상쾌하다. 가벼워진 만큼이나 살아있음도 더 깊이 느껴진다. 포도나무에 붙어있고 팔은 가볍게 하늘로 향하고 새들과 바람이 자유로이 스며드는 지금이 좋다.

[종교] 경외감

[일상] 낙원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