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불분명하다. 남겨진 것은 그 때의 감정과 이미지뿐이다. 과거의 사건은 지나가지만, 감정과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나 살아간다. 기억 안에만 갇혀있는 이 작은 동물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자라난다. 이 녀석은 자신의 몸을 먹으며 커간다.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이미지를 먹고 떠올리며 무한히 커 나간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간 후 돌이켜 보면 과거의 그 사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은 채 그 모든 사건은 긍정적인 모든 요소들은 제거된 채 지독히도 짜증나고 두렵고 혐오스런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남는다. 혹은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이 제거된 채 아름답고 멋진 감정과 그림으로만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부정적인 오랜 감정의 잔재들이 그러하고 지금까지도 나를 지켜주고 있는 아름답고 가슴 벅찬 순간들이 그러하다.
가장 좋은 것은 기억과 마음의 방에 갇혀 버린 감정과 그림들을 바깥 세상의 말과 생각들로 표현하고 분출하는 것이다. 기억에 갇혀버려 사나워지고 거세당한 채 순종적으로 바뀐 동물이 아니라 거닐고 뛰놀 수 있는 그런 친구같은 이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와 예술은 우리의 기억과 감정과 그림들을 왜곡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훌륭하게 자기의 이야기로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로 바꿔 나가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 혼자만의 환상과 괴로움이 아닌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다른 이의 고통을 이기게 해줄 인생의 지혜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예술적인 사람이 좋고 종교성이 있는 사람이 좋다. 예술을 하는 사람,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예술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이 좋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괴로움에 함몰되어 자기만의 성에 갇혀있거나 그 성 위에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이가 아닌, 자기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자기의 어려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이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 그런 이들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이 사람의 훌륭함, 인간다움이 아닌가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감성과 이야기와 그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