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종교] 성탄절 세례

교회에서는 성탄예배즈음에 세례식을 갖곤 한다. 세례는 회중 앞에서 이제 공식적으로 예수를 내 삶의 구주로 믿으며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지난 이천년동안 내려온 종교의식이다. 세례를 받고 세례교인이 됨으로 교회에서 이런저런 회의에 참여하고 직분도 받을 자격도 갖게 된다.

세례식이 있다는 것은 세례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세례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교회에 처음 나오고 지속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시골교회는 새로 오는 사람이 없기에 세례식은 거의 없다. 주로 장례식이 있을 뿐이다.

감사하게도 이번 성탄절에 세분이 세례를 받으셨다. 유지교회 생활 3년동안 한 해에 한분씩 나오신 거다. 모두 누가 나가자고 해서 나온게 아니라, 교회 목사도 바뀌었다는 소리도 들리고, 그냥 갑자기 나가고 싶어서 스스로 나온 분들이다. 새로 나온 분들이지만 세분 모두 늘 예배에 잘 참석하시고 이모먕 저모양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하신다. 게다가 세분 남편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성씨가 다들 "진"씨다. 세분이 앞에 서니 뒤에 앉은 한 나이든 집사님이 말씀하신다. "셋다 진씨 집 사람들이네".

 

어쨌든 성탄예배시간에 세례식을 진행했는데, 세례식이 시작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세분이 자리에 앉아서 나오지 않으시고 그냥 웃기만 하신다. 왜 그런가 했더니 쑥스러워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들 웃는 가운데 앞으로 나왔는데 앞에 선 세분이 몸이 구부정해지신다. 다리 무릎 관절도 아프로 허리도 아프기 때문이다. 결국 한분이 "아이구야. 나는 다리 아파서 못 서있겠다"라며 그냥 주저 앉으신다. 다들 웃음바다에 세례식이 진행이 안된다. "그냥 세분 다 편하게 앉으시죠". 세 분이 다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예식이 계속 진행되었다.

신앙의 확신이 있는지 묻는 물음에 세분은 "네. 아멘... 아 예." 라고 대답을 하신다. "여러분은 이 시간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을 확신하며, 앞으로 주님만을 섬기며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습니까?", "네.. 네.. 그렇구 말구요". 회중에게도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죄를 멀리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함을 다시금 확신합니까?"... 회중은 "아멘"으로 크게 대답했다.

세례식 예문에 기록된대로 모든 순서를 다 진행했는데도 세분은 잘 참고 참여해 주셨고 함께 한 교인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해 주었다. 세례식을 진행한 내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고 감동이 있었다. 세례식을 마치고 세분에게 성경을 선물로 증정할 때 세분의 눈가엔 눈물이 맺히고 눈도 빨갛게 충열되어있었다. 의자로 돌아가서 앉지 않으시고 앞에 선 채로 내 손을 잡으시고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신다. "딸이 다른 교회에서 권사가 되었어요. 동생도 나보고 옛날부터 교회 나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 나도 나왔어요. 목사님. 이제 나도 나왔어요".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다.

교회의 대표적인 예식인 성찬식과 세례식은 참 딱딱한 예식이다. 그렇지만 더하여 세례식에는 물이 있고, 성찬식에는 포도주가 있다. 마음과 생각을 적실 만하게 흐르는 것들이 늘 있다. 건조하기만 할 예식은 물과 포도주로 물기를 머금고 딱딱해진 맘과 생각을 풀어준다. 비록 팔십이 넘는 나이에 몸도 굳어지셨지만 맘은 점점 더 소녀같고 착해져만 간다. 그 분들의 머리에 물을 흘려 보내면서 내 맘에도 무엇인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분들의 맘에도 무엇인가가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느낌적 느낌도 느껴졌다. 성경에는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나지 (혹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이 있는데, 왠지 그 말씀이 생각났다.

세례식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들의 흩어지고 깊이 갈라진 생각들 속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들의 틈새로 무엇인가가 흘러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말라 비틀어진 땅에 비가 스며들 듯이, 저 분들의 하얗게 빛바랜 머리 속으로 물이 스며들듯이, 우리네 살아오며 생긴 수많은 흔적과 갈라짐 속에 무엇인가가 흘러들어 온 것을 느꼈다.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그런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슴 뭉클한 세례식으로 더욱 베리베리 메리메리한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아들이 하는 말이, "옷이 특이하고 멋졌어!" 말을 한다. "응?? 무슨 옷" 되묻자, "아... 그 펄럭이는 흰옷". 가운은 성례전이 없을 때는 입지 않아서인지 아이는 내가 가운 입은 옷을 처음 본 듯 한데 나름 자기 마음에 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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