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책] 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원종우.김상욱, 동아시아,2015)

  전문가. 전문가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한 세계를 보고 경험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발은 일반인들이 사는 땅 위에 있다. 그는 두 세계가 겹치는 곳에 살고 두 세계를 모두 알고 있다. 전문가는 자신이 본 세계를 여행 가이드나 혹은 여행지에서 돌아와 여행지를 알리는 사람처럼 일반 사람들의 언어와 그림으로 그가 경험한 세계를 설명할 기본적인 자격을 얻는다.

  성경에 보면 모세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와 시내산에 오른다. 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늘 위에 있는 거룩한 신의 성막을 본다. 그리고 색과 길이와 넓이를 가진 천막으로 표현하여 광야 위에 천막을 짓는다. 땅 위에 지은 것들이 하늘 위의 그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늘의 위의 있는 것의 그림자나 모형본은 된다 말한다. 설명하고 그려내는데 한계가 있다해도 일반인들이 보지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고 멋진 일이다. 

  이 책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대중들을 위해 과학을 설명하는 과학 교양서다. 소제목으로는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다. 책 제목에 이름이 들어갔다는 건 그만큼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는 걸 의미한다. 책 표지 안쪽에는김상욱 교수를  "팟캐스트와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양자역학의 내용과 의미를 알리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도 하다"라고 소개한다. 

  소개글과 같이 이 책은 과학 중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한 소개서다. 이 책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의 제3권이고 제4권은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가 있다. 책값은 7,500원이고 작은 크기에 총 128페이지로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글자로만 보면  두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책 머리에 보니 아인슈타인의 말을 소개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당신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최근에 매드사이언티스트라는 블로그에 올라온 글에는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과학자에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대중에게 좀 더 쉽게 과학을 설명을 하는 과학자나 중개인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에도 매드사이언티스트에 올라온 글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전달받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참 어렵다. 애초에 과학적 성과들은 대개 수학적인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것인데 반해서 수학을 잘 모르고 수학을 좀 알더라도 그 수학적 도식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과 비유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대상도 분명한 듯 보인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과학에 관심은 많고 이런 저런 블로그는 읽지만 정작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설명하지는 못하는 사람을 위해 쓰여진 책인 듯 하다. 무슨말이냐면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에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란 말이다. 

  전달자는 일종의 해석자로 듣는 사람들이 수준에 맞추어 알 수 있는 말과 그림을 그려야 하는 고충이 있다.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은 있을 수 없다.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을 고려해서 더 깊이 설명하지도 않는다. 단어는 어렵고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는 듯 하다가 넘어가 버린다. 하나의 내용을 다양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그런 관점을 끝까지 갖고 가지 못한다. 

  이 책은 장점이 분명하다. 싸고 얇다. 두꺼운 과학책은 사기도 읽기도 부담스럽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다가서기에도 손에 들기에도 쉽다. 물리학이나 과학적 지식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4권도 읽고 싶은 맘이 들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단어와 비유에 있어서 좀 더 수준을 낮추고 기본적인 개념들을 충실히 설명하면서 깊이를 갖추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 딴지를 던진다면 아인슈타인 이야기에서 살짝 짜증이 났다. 종교인이 과학 이야기하는 것도 좀 거부감이 들지만, 과학자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저 한두마디 말이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남들 다 지나가는 별거 아닌 것에 짜증이 났을 뿐이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사실 과학자가 신 이야기를 하면 그건 이미 진 겁니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박은 과학적 실험이나 수학적 근거를 들어서 해야지, 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는 이야기죠. 나는 이렇게 믿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못받아 들이겠다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거부하면서 물리학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고 하는 거는 어떻게 보면 오만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물리학은 결정론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드러낸 것뿐이니까요. 우주는 원인가 결과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양자역학은 그렇지 않으니까 자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대다수의 물리학자는 신은 주사위를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3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아인슈타인이 말한 신은 기독교나 여타 종교의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은 글을 쓴이도 알 것이다. 더군다나 아인슈타인이 단지 논쟁을 피하고 도망치듯이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님을 알 것이다. 나도 글쓴이가 말한대로 아인슈타인은 인과론적인 우주와 그런 법칙을 생각했기에 그런 것이라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그런 모든 질서정연한 우주의 궁극적 질서를 가진 존재였다. 이 책에서 그런 아인슈타인을 비꼬기 보다는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으면서도 고전적인 물리세계의 끝을 포기하지 않고 새롭고 통합적인 질서를 찾으려고 한 아인슈타인으로서 이해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글쓴이가 말미에 "오늘날 대다수의 물리학자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는데 당시 아인슈타인의 말을 들은 다른 과학자의 말로 대꾸하자면 "신이 주사위놀이를 하는지 아니 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라고 하고 싶다. 물론 이런 말들조차 당시에는 비난과 비평이 아니라 일종의 유머나 비유였음이 분명하다.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도 쓸데없는 짜증나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 설명이 재미있고 일정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얘기를 풀어갔기에 책 자체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짜증보다는 재미가 어려움보다는 끄덕인 기억들이 더 강렬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솔직히 이런 아쉬움은 글쓴이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자의 책임이 더 큰게 아닌가 생각한다. 글쓴이가 편집까지 다 했다면 할말은 없지만. 다음 번에는 좀 더 쉬운 말과 깊어진 생각들로 쓰여진 책을 만나길 바란다. 물론 다음 번에 김상욱교수가 쓴 책도 당연히 살 생각이다. 내 수준에서는 분명 너무 어렵긴 하고 일반 다른 사람들에게는 권하긴 어려워도 내게는 여전히 도움이 되고 돈을 주고 살만한 책이기에 그렇다. 

  이 글은 내 자신의 잣대로 보자면 책 리뷰가 아니다. 책을 보고 느낀 한두가지 생각과 감정에 대해 쓴 감상문이다.  아무튼 나는 일반 대중의 언어로 소개된 과학책들이 좋다. 나또한 과학의 언어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갖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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