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본다는 것에 대하여 About Looking, John Berger
본다는 것에 대하여, 존버거 (About Looking, John Berger, 1980)
존 버거가 쓴 사진과 예술에 대한 책 "본다는 것에 대하여"로 작은 세미나를 가졌다. 책을 간단히 요약해 전달한 것의 일부를 기록으로 남긴다. 첨부한 그림은 책에 없거나 책 내용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책에 있는 내용 중 일부를 임의로 발췌했고, 책에 없는 내용도 있다.
들어가면서
"본다는 것에 대하여"는 사진과 그림에 대한 책이다. 사진과 그림은 작가의 눈에 비친 영상이다. 눈으로 본 것을 기록으로 남긴 작품이다. 존 버거는 여기에서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들은 왜 그렇게 보았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책은 친절하지 않다. 책에서 소개한 그림은 책 속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일일이 그림을 찾아 봐야 한다. 작가들의 삶을 압축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존버거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번역자체도 난해하다. 영문판을 참조해야 비로소 이해 되는 문장이 꽤 있다. 책은 얇지만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같은 주제라면, 이 책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존버거, 열화당)를 보는게 좀 더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수 많은 작품이 실려있고 번역도 이 책보다 잘 되었다.
I.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
1. 왜 동물을 구경하는가?
‘동물과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채 바라보았다. 인간은 동물에게 두려움과 친근함을, 인간과 같음과 인간과 다름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19세기 들어서 서유럽과 북미지역은 전에는 인간과 자연 사이를 중재해 온 모든 전통을 파괴시키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동물에 대한 격하는, 인간이 고립된 생산과 소비단위로 격하되도록 만들어 온것과 동일한 과정의 일부다"
“일반인을 위한 동물원은 일상생활에서 동물들이 사라져 버리는 시작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물다운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란 어디에도 없다. 고작해야 깜박이며 스치듯 외면해 버리는 동물들의 시선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사이에 오가던 시선이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동물과 인간 : 같으면서도 다르다. 언어의 차이. 해석과 의미의 차이. 지배하면서 숭배함.
동물의 특징 : 야생성, 독립적,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 침묵, 천진함
동물과 인간의 역사 : 마술적 힘을 가진 신탁과 제의 —> 식품, 노동, 수송, 의복의 수단으로 공존 -> 산업화로 분리, 현재의 동물은 대량생산의 식재료, 동물원, 애완동물, 애니메이션.
존버거는 1장에서 동물과 동물원을 예로 든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하던 시대에서 동물은 산업화에 밀려 숲으로 사라졌고 어느덧 동물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다시금 인간에게 다가섰다. 인간은 동물에게서 인간과 다른 능력을 보며 신성화하기도 하고 동물에게서 오히려 인간다움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동물과 인간이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은 단절되고, 자연에 있던 동물은 동물원으로 들어와 인간에게 보여지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는 동물이 있던 세계의 일부에서 인간이 살았지만, 이제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의 허락된 곳에서만 동물이 살고 있다.
사진과 그림 이야기 전에 동물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산업화로 인한 소외와 고립, 그리고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한 타자화 등은 앞으로 존버거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동물을 사람으로 바꿔 놓고 읽으면 극단적으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요즘에는 인간과 동물이 또 다른 형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그런 관계를 잘 표현한다. 십여년 전에 다른 나라에 동물만 나오는 TV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덧 지금이 그런 세상이 되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많아졌고 관련된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특별한 사람들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보편화 되었다. 사회적인 제도나 개인의 삶에 끼치는 의미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II. 사진술의 이용
1. 신사복과 사진 _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나고 도시문화에 물드는 농촌
(아우구스트 잔더 August Sander 1876-1964, 20세기 초의 중요한 인물사진작가로 “우리 시대의 얼굴 Face of our time”(1929)으로 유명하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목표는 1876년 자신이 태어난 지역인 쾰른 주위에서 가능한 모든 유형, 사회적 계급, 하위 계급, 품팔이, 생업, 특권 등을 나타내 줄 수 있는 원형을 발견해 내는 것이었다”
“잔더는 자신의 엄청난 작업을 인종 이론가들과 사회현상 연구자들의 자문을 받는 학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관찰함으로 이루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신사복은 그들의 모습을 볼품없게 만든다. 그들이 신체적으로 기형인 것처럼 보인다. 한물간 유행은 새롭게 유행되기까지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제 논리는 유행에 뒤진 것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종류의 우스꽝스러움이 아니다. 여기서 복장은 감싸고 있는 남자들의 몸보다는 덜 우스꽝스러우며, 덜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신사복은 멀쩡해 보이지만 신사복을 입은 농부의 모습은 유행에 뒤쳐져 보인다는 의미다. 이 사진만 보면 차이를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온 신사들의 모습과 이들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아래에 나온 사진을 참조해도 비슷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신사복이라는 것은 19세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30여년 동안 전문적인 지배 계급의 복장으로 개발되었다. 전적으로 앉아서 일하는데서 생겨나는 권력을 이상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초의 지배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착용하던 복장이었다. 신사복은 토론과 추상적인 평가의 동작을 편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신사복은 사무실서 펜을 굴리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복장이었다)
“누구도 농부들이 신사복을 사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며, 무도회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세 사람은 자신들의 신사복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신사복을 일종의 장식으로 입었다”
“시골사람들과 도시노동자들은 신사복을 선택하도록 설득되었다. 선전과 사진으로 새로운 대중 매체들과 판매원들, 새로운 여행자들을 구경하며 영향을 받았다. 편의시설, 국가의 중심 조직들의 정치적 발전으로 그리 되었다.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계급적 기준을 받아들였는데, 세련된 맵시와 의복의 값어치와 관련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자기들의 기준 내에서도 그리고 상류계급의 보기에도 언제나 열등하고 서투르고 세련되지 못했고 수세에 몰린 듯한 모습이었다. 문화적 패권에 굴복한 것이다"
존버거는 신사복과 사진을 통해서 노동이 필요없는 사람들이 입던 신사복이 어떻게 농부와 평민들의 옷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주목한다. 산업화는 신사복을 농부들이 살 수 있을만한 가격으로 제공해 주기도 했지만, 신사복은 농부들이 중요한 행사나 잔치에 참여할 때 입어야 되는 옷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신사복을 입은 사람이 자신들보다 더 성공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찌보면 자기보다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계층의 의복을 입으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된 듯 만족해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트잔더는 산업화로 인해 변해가는 농촌의 모습을 봤다. 발전하는 시대에 성공적인 도시의 모습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복과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우그스트잔더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기 주변의 실상을 일일이 관찰함으로 작품의 주제를 얻었다. 자신의 주변을 직접 관찰했다는 것이 의미있다. 오늘날 수많은 미디어가 세상의 소식을 알려준다. 너무 많은 정보에 무엇이 진짜인지 모를 때도 있고, 정보에서 뒤쳐진다는 소소한 강박에 잡힐 때도 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 주변의 현실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은 아우구스트잔더의 방법론이 도움이 될 듯 하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거대한 세상을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발로 밟고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과 현실을 관찰하는 것 또한 세상을 보는 중요한 방법이다.
2.고통의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_ 현실과 단절된 비참한 현실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선행 혹은 무시
"고통스런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타인이 당하는 고통의 순간이 우리를 집어삼키게 된다. 우리의 마음속은 절망, 또는 의분 둘 중 하나로 채워진다.”
“고통의 순간을 격리된 것으로 만드는 카메라는 그 순간의 경험이 경험 그 자체를 격리시키는 것 못지 않게 폭력적으로 그것을 격리시킨다."
“최대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고통의 순간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순간들은 사진으로 촬영된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그밖의 모든 순간들과 단절되어 있다”
“(현실과 단절된) 사진 속 비극적 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이들은 죄책감과 도덕적 무능함을 경험한다.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려고 하거나, 도덕적인 속죄함으로 기부와 선행을 한다. 원인이 되었던 문제에서 정치적인 측면은 사라져 버린다”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사진은 어떤 효과를 불러올까. 전쟁의 참상과 세계의 빈곤을 고발하는 사진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존버거는 몇가지로 얘기한다. 첫째는 그것은 고통을 기록함으로 고통의 현장에 걸친 앞뒤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고통만을 영원히 강조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고통의 현실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의 현실을 무시하거나 혹은 양심의 가책을 갖게 해서 고통의 현실에 소박한 도움을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세째로, 결국 고통을 기록한 사진은 고통이 야기된 사회와 정치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기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양심을 강조하여 각자의 선행을 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전쟁을 반대하며 구호물자에 기부를 하지만 막상 그 전쟁이 일어난 책임과 진상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존버거는 여러 전쟁의 이야기를 얘로 들면서, 그중 베트남전쟁의 참상은 처음에는 언론에 실리지 않다가 나중에는 언론에 실린 것으로 대중이 그런 폭력을 기록한 사진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설명한다.
한국사회에서도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사진들이 실리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사회적인 제도와 구체적인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가기보다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무시나 소극적인 도움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존버거의 얘기를 대중의 일반적인 성향으로 고려해본다면 여러모로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반면, 존버거의 얘기와는 달리 폭력과 고통의 기록이 일부 대중에게 커다란 기폭제가 되어 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4. 사진술의 이용_ 과거의 맥락과 이야기의 기억을 현재의 시간과 이야기로 재현하는 사진
사진술은 민주적인 형태로 사용될 수 있었지만, 그것의 정치적인 힘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사용한 것은 나치였다. 그들은 사진을 선동의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사진의 정치에 있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공적으로 보여지는 사진은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로 사용됐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사진 속의 앞뒤 이야기를 모른 채 한장의 사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에 사적인 사진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와 더불어 보게 된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사진술의 가장 자유로운 순간으로서 사진은 순수 미술의 제한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민주주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대중적인 매체가 되었다.”
“나치는 조직적으로 사진을 동원한 선전술을 이용했는데, 새로운 매체가 가진 “박진감”을 고의적인 선동수단으로 이용하도록 부추겼다."
“카메라는 해낼 수 있지만 눈 그 자체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은, 그 사건의 외관을 그대로 고정시켜 놓는 일이다”
“사적인 사진은 카메라가 제거해 버린 것(사진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과 연속적인 관계에 있는 맥락에서 감상되고 읽혀진다.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는 생생한 기억을 간직해 주는 기념물이다. 사진은 살아온 삶을 기억하게 해주는 기념물이다”
“공적인 사진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경험했던 모든 것과는 별개의 것이 되어 버린 정도다. 공적인 사진은 낯선 기억에 도움을 준다. 이 사진은 어느 용도에나 이용될 수 있는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진의 기능이 기록이라는 점에서 존버거는 사진을 인간존재의 구원과 연결시킨다. 망각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기억을 유지하고 존재를 유지시켜 준다. 하지만 세상을 보고 기억하는 신적인 눈으로 사용될 카메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한다. 카메라는 사람의 현실을 기록하고 기억함으로 구원의 역할을 하는 신의 눈에서, 자본주의의 도구로 바뀌었다.
“카메라가 신의 눈을 대신해 온 것일까? 종교의 쇠퇴는 사진의 발흥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문화는 신을 사진 속에 끼워넣어 왔던 것일까?… 기억이라는 기능은 어디서나 인간으로 하여금 마치 그들 자신들이 어떤 사건들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부터 보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지 않았더라면 목격되지 않았을 사건들을 주목하고 기억하는 눈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잇지 않겠느냐고 묻게 만들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구원의 행위임을 함축하고 있다.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것으로부터 구제되어 온것이다. 잊혀진 것은 버림 받은 것이다… 인간이 시간에 대하여 갖고 있는 길고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이끌어 낸 예감은 거의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기독교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9세기가 계속되는 동안 자본주의 세계의 세속화는 신의 심판을 진보라는 이름하에 역사의 심판으로 은폐(축소)시켰다. 민주주의와 과학은 그러한 심판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짧은 기간동안 사진이, 우리가 살펴온 것처럼 이런 집행자들의 보좌 역할을 했다.” (19세기 기독교의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에 대한 신의 심판을 초월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 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20세기 후반동안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은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갖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왔다. 과거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갖고 있고 미래를 알아차리는 안목을 갖지 못한 산업화되고 ‘발전된 ‘ 세계는, 정의의 원칙을 모든 신빙성에 털어넣어 없애 버린 편의주의 속에 살고있다. 편의주의는 모든 것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일을 하는 도구는 바로 카메라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기억이라는 부담을 덜어 준다. 신처럼 우리를 꼼꼼하게 살피고 우리를 대신하여 꼼꼼하게 다른 것들을 살펴준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어떤 신도 그토록 냉소적인 적은 없었는데, 카메라는 잊기 위해 기록하기 때문이다. 수잔 손택은 이 신이 바로 독점자본주의라고 한다”
그럼에도 사진은 여전히 훌륭한 기능을 갖고 있다.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고, 그 사진을 바라보는 바로 이 순간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의 이야기에 참여하게 만든다. 존버거는 사진이 자본주의의 도구로 전락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과거를 재생함으로 이야기를 보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사진이란 무엇이며 사진작가란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을 제시한다.
“사진의 사적인 이용에 있어서는 계속되는 연속성 속에서 사진이 살아남아 있을 수 있도록 기록된 순간이 가지고 있는 맥락이 보존된다. 대조적으로 공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사진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정확히 말해 그것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자의적인 용도에나 이용될 수 있게 되는 죽어버린 대상물이 되어 버린다.”
“사진들은 과거의 유물들이며 일어났던 일들의 흔적들이다. 만약 살아있는 사람들이 과거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과거가 사람들이 자신들 스스로의 이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절대 필요한 부분이 된다면, 모든 사진들은 포착된 순간으로서 존재하는 대신에 살아있는 맥락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되며, 계속해서 시간 속에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사진술이 해내야 하는 과업은 사진술을 그러한 기억을 위축시키게 하는 하나의 대체물로 사용하는 대신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기억의 일부분이 되도록 통합시키는 것이다… 사진작가에게 이것은 그녀 혹은 그 자신을 그밖의 세계에 대한 보고자가 아니라, 촬영한 사건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위한 기록자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안이 되는 사진의 용도는 우리를 다시 한번 기억이라는 현상 및 능력으로 이끌어 간다. 그 목적은 사진에 대한 맥락을 구성하고, 그것을 언어로 구성하며, 그것을 다른 사진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그것대신에 지속되는 사진이나 이미지라는 텍스트로 구성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기억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모든 관념 연합들이 동일한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통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진을 경험, 사회적 경험, 사회적 기억이라는 맥락 속에 다시 집어넣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기억의 법칙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그것의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놀랍도록 결정적인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도록 해야만 한다… 어떤 사진이라도 만약 그것을 위하여 적절한 맥락이 창조된다면 그러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사진을 통해 현실에서) 서술된 시간이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띄게 되면 역사적 시간이 된다. ”
III. 체험된 순간들
1. 프리미티브 화가와 전문 화가_전통에서 벗어난 삶의 자리에서 출발한 예술가들
19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화가들은 고전적인 화가들과는 사회적 신분이나 작품에 내용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존버거는 그들의 삶의 현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물론 같은 현실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부터 내려온 방식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현실과 세계를 느끼며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묘사하고자 했다.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방법으로 훈련받으며 계급적인 사회경험들을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주제를 그린 전문화가들과는 달리, 프리미티브 화가들은 중년, 또는 노년에 들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작을 한 사람들이다. 상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파생되고, 경험의 심오함 또는 강렬한 자극을 받아 생겨났는데 예술적으로는 서투르고 소박하게 여겨졌다.”
“19세기 화가들은 의식적으로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이유로, 그림이 다른 계급들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그림의 예술적 전통을 확대시키려 노력했다.(밀레, 쿠르베, 반고흐) 최초의 프리미티브 화가들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예술로서의 미술이 처음으로 관습적 목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난 이후였다. 자유분방한 화가는 일반적인 계급 구분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는 쪽을 택하며, 미술이란 어느계급에서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느낄 수 있는 생활양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세관원 루소, 우체부 슈발이 그런 부류인데 일요일이나 특별한 시간을 내어서 그림을 그리는 유쾌한 한량들 정도로 취급을 받았다.”
"프리미티브 화가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관례도 물려받지 않고 단독으로 생겨났다. 전통적으로 그림과 관련된 문법이라 할 수 있는 원리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은 전문적 기교를 배우지 않아 서툴렀으며 비문법적이었다.”
"이들은 전통과는 무관하게 출생했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오며 경험한 것이 전통속에서는 자치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리미티브 화가들의 의지는 자신들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눈으로 알 수 있게된 사회에 대한 깊은 회의에서 생겨났다."
공동체나 신앙에 새로운 시각을 갖고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한때는 그들이 특이하고 별난 사람들로만 생각되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왜 그런 공동체와 그런 메세지를 전할 수 밖에 없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존버거의 이야기로 비추어 보자면 그들의 삶이, 그들의 현실이, 그리고 그런 현실에 정직하게 반응한 그들의 가슴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존과 다른 형태와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을 통해서 변화되는 세계속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이들을 조금은 긍정적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2. 밀레와 소농 계급의 농부들_그림의 주제와 시대에서 소외당한 농부를 그리다
“밀레 이전의 어떤 유럽의 화가도 시골의 노동을 그림의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가 일생에 걸쳐낡은 전통에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의 그림 언어가 무시해 왔던 것을 말하려고 했다. 그가 사용했던 언어는 유화라는 언어며 주제는 독자적인 주체인 소농계급의 농부였다.”
“무엇이 밀레를 자극하여 새로운 주제를 택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가 노르망디 소농 집안 출신이며, 성서에서 나온듯한 엄숙함이 그의 믿음의 결과라 가정하는 것은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1847년 이전 그의 그림과 그가 불가지론자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역사와 화가 : 수동적이고 염세적이던 이가 역사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후 새로운 것을 보기 시작했다.
“밀레의 역사관은 너무나 수동적이고 염세적이었다. 하지만 1848년 혁명과 1851년까지 세월동안 사람들이 일으키고 열망했던 기대는 그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권리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예술양식은 사실주의였는데 감춰진 사회적 현상을 사실그대로 드러내 보여 줬다. 1947년 이후, 밀레는 그의 나머지 27년간의 삶을 프랑스 소농계급의 삶을 드러내는 일에 헌신했다. 1789년의 혁명은 소작농들을 봉건적인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켰지만 19세기 중반까지 그들은 자본의 ‘자유로운 교환’의 희생자가 되었다.”
“전람회 관람객은 시골지역의 궁핍함에 대해 전혀 몰랐고, 밀레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만족과 여유 속에서 편안해하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밀레의 그림에는 ‘향수’가 있는데 이는 개인적인 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의 역사관에도 속속들이 배어 있었다. 그는 온갖 측면에서 나타나는 진보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궁극적인 위협으로 여겼다... 그는 마을을 감상적인 것으로 그려놓치는 않았다. 소농계급의 농부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의 대부분은 혹독한 삶을 살도록 몰락해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론자로 불리웠는데 혹 농민과 농촌의 현실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냈다. 20세기가 막바지로 향하면서 자본주의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때 그의 그림은 다른 의미를 제공했다. 교회와 영리 단체들에게 복제된 그의 그림들은 시골 지역에도 퍼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치욕스럽게 완강히 거부되었던 것이 이제는 자부심가운데 긍정되는 작품이 되었다”
“그의 작품을 연대순서로 감상하면 우리는 소농 계급의 농부들이 글자 그대로 그늘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의 필생의 노력으로 농부들에게 존엄성과 영속성을 부여함으로 그들을 제대로 표현했다”
과도기적 화가 : 전통적인 방식의 풍경화에, 전통적이지 않은 주제를 그려넣다.
“밀레의 그림에는 인물들과 그들의 주변환경 사이에 통일성이 없다. 인물들의 불명성은 그림(배경)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림(배경)은 인물들이 불멸성을 갖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결과 다른 곳에서 잘라내어 붙인 듯한 인물들은 딱딱하고 과장되어 보인다… 나는 그가 들고 나온 주제를 전통적인 유화의 언어가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 생각한다. 소농계급의 농부가 그의 행위들을 통해서 표현해 낸 땅에 대한 관심은 경치 좋은 풍경과는 걸맞지 않았다. 대부분 유럽지역의 풍경화는 나중에 관광객으로 불리는 도시에서 온 방문자에게 말을 걸었고, 풍경은 도시 방문자가 보는 방식이었고, 풍경화 자체의 훌륭함은 결국 도시 방문자가 보는 것이었다. 작업중인 소농계급의 농부 하나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광영을 상상해 본다면 사회적, 인간적인 모순이 되는 것이었다… 대지와 전면대신에 소농계급 농부가 해내고 있는 폐쇄적이고, 거칠며, 참을성 있는 노동의 육체적 조건을 표현해 내기 위한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공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멋진 경치를 묘사하는 풍경화의 전통적 언어를 파괴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반고흐는 노동을 하고 있는 인물과 그의 주위 환경을 자신의 붓자국의 움직임과 그것이 갖고 있는 힘으로 통합시켰다. 주제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입의 결과였다. 그러한 화풍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각으로 그림이 바뀌었다. 증인이 그의 증언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표현주의 그리고 나중의 추상적 표현주의와 객관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언어로 역할을 하던 그림이 궁극적인 파괴로 이어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유럽 미술의 전통에서 소농 계급의 농부가 주제로 수용될 수 없었다는 것은 저개발 국가들과 선진공업국들 사이에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무조건적 대립을 정확히 예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에서이다. 만약 그렇다면 밀레가 인생을 통해 그려낸 작품들은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들이 갖고 있는 계급 조직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이러한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프랑스 2월혁명. 위키피디아] 프랑스 2월 혁명은 1848년 2월 22일에서 24일에 걸쳐 일어난 의회 내 반대파가 한 운동이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이 해산하고 공화정이 성립하였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샤를 10세가 퇴위하고 루이 필리프 1세가 입헌 군주로서 즉위하였지만, 입헌 군주정은 소수 부유한 지주층이 권력을 잡은 체제였다. 1840년대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한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은 보수 경향을 띤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2월 혁명을 일으켰다. 2월 혁명 중 치러진 보통선거에서 온건 공화파가 의회를 독점하자 일부 과격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으며,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인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정의 대통령으로 결국 당선되었다. 2월 혁명은 7월 혁명보다 유럽 사회의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을 완벽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변화를 몰고 왔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3월 혁명이 일어나 메테르니히가 추방되고 빈 체제가 붕괴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통일 운동이 일어나 독일 연방이 결성되었고 독일 자유주의자들은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통일을 회의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마치니의 청년 이탈리아당이 등장하였다.
성인의 시각이 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 혹은 세상의 커다란 현실과 크게 충돌하며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곤 한다.
밀레는 전통적인 풍경화의 중심에 농부를 집어 넣었다. 풍경을 그리는 기법과 풍경은 전통적이었지만 그 속에 그려진 사람은 전통적이지 않았다.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것, 밀레라는 화가를 존경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단순한 취향의 문제는 아니다. 고흐는 전통적인 기법을 떠나 자신의 기법으로 풍경과 농부를 그렸다. 주제나 기법에 있어서 밀레를 더욱 심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경험과 생각은 전통적인 기법과 주제에서 이탈해서 자기만의 것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법과 주제는 또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며 더욱 심화된다. 전통과 다른 것을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3.세케르아흐메드와 숲_ 주체와 객체의 만남과 전복, 전통적 세밀화에서 실존주의적 화풍으로
şeker ahmet paşa (1841-1907, 터키 화가)
"이 그림은 왜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걸까? 세케르 아흐메드는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세케르는 실존주의적이다. 그림은 숲의 경험과 조화되어 있다. 숲의 흡입력과 공포는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요나처럼 당신은 그 안에 들어있는 당신 자신을 보게 된다. 숲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런 경험은, 당신이 이중적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에 관려되어 있다. 당신은 숲을 지나 당신이 갈길을 가게 되며, 동시에 당신은 밖에서 보듯이 숲에 삼켜진 당신 자신을 본다. 이 그림이 독특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나무꾼이라는 인물이 경험하는 바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다는 것이다."
"유럽 회화의 영향을 받기 이전, 터키 회화의 전통은 도서의 삽화나 세밀화 중 하나였다. 세밀화의 대다수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전통적인 회화 언어는 기호들이거나 장식들 중 하나로서,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물질적이지 않고 정신적이었다. 세케르아흐메드에게 하나의 언어를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결정은 처음에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인간과 역사라는 세계관 전체였다. 그는 그림 기법이 아닌 존재론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세케르 아흐메드는 숲을, 그 자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사물이자, 그가 파리에서 배웠던 것처럼 그것(대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하나의 존재로 마주하고 있었다. 내게는 이것이 두개의 전통 사이에서 분리-이 숲 그림이 그 자체로 존재를 갖게 되는-가 시작되도록 만들게 된 원인이라 생각된다.
“세케르 아흐메드의 그림은 “거리의 가까움 속으로 들어오는 것”에 관한 것이다. "거리의 가까움 속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상반되는 한가지 움직임이 존재한다. 사고는 떨어져 있는 것에 접근하지만, 그 떨어져 있는 것 또한 사고에 접근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재, 즉 지금이라는 것은 잴 수 있는 시간의 단위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것의 결과이며, 존재하는 것이 능동적으로 그 자체를 내보인 것의 결과다… 나무꾼과 그의 노새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은 그 둘을 거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그것을 깨닫게 되지 않고도 그것을 지각해 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그 숲이다. 자신의 현재 존재를 가지고 있는 숲은 나무꾼과는 반대 방향으로 - 즉 우리 쪽을 향해 앞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 움직이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에게 접근하고, 그에게 도달하며, 그에게까지 확장하는 지속적인 머물기다”
“파리에서 공부한 19세기 터키 화가가 그린 지방 색채를 지닌 그림과 20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 평을 받기도 하는 독일의 한 교수의 사상 사이에 존재하는 우연의 일치는, 세계 역사의 현 단계에서 어떻게 갖가지 문화들과 주요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대들 사이의 중첩된 부분들에서만 드러날 수 있고, 하이데거라면 “명백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이라고 말했을 진리들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다"
7.프랜시스 베이컨과 월트디즈니_소외와 고독과 관찰의 대상이 된 고통스런 육체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인간의 몸에 집중되어 있다. 몸은 대개 뒤틀려 있는 반면 옷이나 주변은 상대적으로 뒤틀려 있지 않다. 얼굴이나 몸이 겪게 되는 뒤틀림은 그가 그림물감을 “우연히 신경계와 만나게 (come across directly on to the nervous system.) 하는 방법을 찾으며 얻은 결과다."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물을 직접적이고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되길 바랐으며, 아마도 어떤 한가지 사물을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그것을 두려운 것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베이컨)
“내 경우 나는 그것이 무엇이건 내가 좋아했던 것이라면, 그것은 그것에서부터 내가 작업할 수 있었던 하나의 사고(the accident)가 가져온 결과였다고 느낍니다.”(베이컨). 그의 그림에서 이러한 ‘사고’는 그가 그림에 ‘무의식중에 본의 아닌 표시들’을 하게 될 때 생겨난다. 그의 ‘본능’은 이러한 표시들에서 이미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사물이 가능한 한 사실에 입각한 것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단순히 대상을 도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깊이 암시를 주는 것이거나, 또는 감각의 영역을 깊은 곳까지 열리게 하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예술이 추구하는 전부가 아닌가요?”(베이컨)
“어떤 몸의 외양은 그 위에 찍혀진 무의식중에 이루어진 본의 아닌 표시들이라는 사고를 겪는다. 그것의 뒤틀린 이미지는 그 다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표시를 통해, 또는 그 표시 아래에 감춰진 몸체의 외양을 재발견해 내는 관람자의 신경계와 직접 마주친다."
“베이컨의 세계에 제공되는 대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빠져 나갈 길이라곤 없다. 시간이나 변화에 대한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하나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베이컨은 그 순간을 모든 순간으로 바꿔 놓게 될 사고를 모색한다. 생명체에 있어서 이전과 이후의 모든 순간들을 몰아내는 순간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의 순간이 경우가 많다. 고통은 베이컨의 집착하는 이상 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의 호소력은 고통과는 별관계가 없다. 그러한 집착은 하나의 기분을 전환하는 것일 뿐이고진짜 알맹이는 엉뚱한 곳에 들어 있다. 베이컨의 작품은 서유럽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뇌에 찬 외로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관찰 대상이다.”
“인간은 불행한 유인원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는 불행하지 않다. 따라서 인간이 그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불행한 유인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불행한 유인원이다. 인간과 유인원 두 종을 분리시켜 놓고 있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지각하는 힘이다. 이것이 베이컨의 작품에 깔려있는 기초적 명제다.”
“나는 공포보다는 공포로 인해 지르는 비명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만약 누군가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내가 그려내려 했던 비명을 보다 성공적으로 그려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림 속 인물의 일그러진 표정은 화가와의 충돌에서 우연히 생겨난 사건들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우연한 것은 아니다. 유사함은 남아있고, 유사함에서 베이컨은 그의 완성된 모든 기법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유사함은 성격을 규정하고 인간에게 있어서 성격이라는 것은 정신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 까닭에 이들 초상화들 중 어떤 것들은 미술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다. 비극적이진 않지만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결여된 의식의 비어있는 거푸집으로 여기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최악은 있다. 살아있는 인간은 자기 생각이 없는 망령이 되었다… 베이컨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따지고 들지 않으며, 어떤 것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는다. 최악의 것이 있어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베이컨과 디즈니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외된 행동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며 그둘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존재하는 것 그대로를 인정하도록 권유한다. 디즈니는 소외된 자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고 감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인정할 수 있게 한다. 베이컨은 그러한 행동을 있을 수 있는 최악의 것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해석하며 따라서 그것을 거부하거나 바라는 것 둘 모두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작품이 갖고 있는 놀라울 정도의 형식에 있어서 유사성-뒤틀린 손발, 몸의 형태, 인물들의 관계, 단정한 양복, 손의 동작, 색채의 범위-은 두 사람 모두 이 동일한 위기에 대해 보완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결과다. 디즈니의 세계 또한 시시한 폭력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창조물들은 개성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언제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13.마그리트와 불가능한 것들
회화언어는 “진리”라는 것을 외양에서 찾아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고 표현되는 것에 의해 보존될 가치가 있는 것이라 가정한다. 그 언어는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있어서의 연속성도 가정한다.
마그리트의 그림 대부분은 보여지지 않는 것, 발생하지 않을 사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에 의존한다. 특정한 사건을 구체적인 배경 속에서 보지만, 모든 것은 불가사의 한 것으로 남아있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을 “생각의 자유에 대한 물질적 기호”로 여겼다.
“삶, 우주 무한한 공간등은 생각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경우에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가치를 지니는 유일한 것은 의미, 즉 불가능한 것들이라는 정신적 개념이다” (마그리트)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것들은 그것을 규제하는 수많은 것들과 동시에 일어난다. 이러한 동시 발생은 거의 영구적이다”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들 중에는 꿈에서, 또는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것들을 나타내는 느낌의 표현이라는 것을 넘어서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느낌은 동시에 발생하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격리시키게 되지만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의 예술과 그의 통찰력이 갖고 있는 역설적인 면은 친숙한 것들을 나타내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친숙한 경험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맥스 라파엘은 모든 예술이 목표하는 바는 “사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취소시켜 버리고” 가치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르쿠제는 예술을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위대한 거부’라고 설명했다. 예술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과 소망하는 것 사이를 중재한다는 것은 나의 견해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확장되고, 자유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감소한다.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정신적 개념이 비롯되는 것은 이것으로부터다. 맞물려 있는 억압된 체계 사이로 이따금씩 생겨나는 틈새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것의 불가능성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패배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로부터 후퇴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가 화가로서 창조해 내야만 했던것을 그는 현재라고 생각했다.”
18.들판_객체로서의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연결되고 확장되는 경험
“지금까지 당신은 (이상적으로 그려진 들판과 주의를 끌만한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사건과 뒤이에 일어날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 그림을 보며) 그 경험 안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시간,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그러한 시간을 벗어난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경험은 당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들판에서 본적이 있고 여전히 보고 있는 사건들에 연결되어 있다… 무심하게 제3자적인 관찰의 경험이 그것의 중심에서 시작되어, 즉시 당신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행복함에 생명력을 준다. 당신이 앞에 두고 서 있는 들판은 당신 자신의 삶과 동일한 비례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과 사진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준다. 그림은 본질적으로 보는 사람의 경험이 아니다. 그러나 그림과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상황으로 들어가게 한다. 보는 사람은 결국 그림 속의 풍경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나 혹은 자신의 이야기와 같은 무게를 가진 것으로 받아 들인다. 그림과 사진의 기억과 기록과 시각에 동참하기도 하고, 작품이 보는 이의 삶 속으로 들어와 보는이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재현해 주기도 한다.
맺으며
다른 챕터에 더 많은 작가와 이야기가 있다. 존버거는 산업화와 자본주의로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분리되는 세상을 바라본 작가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주제로부터 벗어나 인간 자신과 내면, 소외된 이들을 자신의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작품의 내용이 바뀌고 표현 방법또한 변화되었다. 이들의 변화는 자신과 현실과 세상과의 만남과 충돌과 관찰과 성찰에서 비롯되었고, 이들의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은 시각 혹은 더 넓혀진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여주는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같은 세상을 보고 있지만 어떤 현실에서 어떤 것을 보는 가에 따라서 작품의 내용과 방법이 변해간다.
사진작가와 화가가 할 수 있는 일과 작품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종교적이고 심리적인 형태로 응용이 가능할 듯 하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작가와 작품을 보지만, 내면적이고 영성적인 시각또한 잃지 않는 존버거 특유의 관점들은 변화하는 시대속에서 나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예술적으로 보이는 작은 생각의 틀거리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