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종교] 교회 정치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정치적이 된다는 말이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타협과 거래를 한다는 말이고, 복음의 본질보다는 정치적으로 얻을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는 종교로부터 나온듯도 보이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세속적인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강력한 권력이자 체계다. 심지어는 세속적인 정치의 형태가 기독교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일도 벌어진다. 이른바 세속화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치는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요, 모른척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로 올라가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늘 갈등을 한다. 낮은 이들을 돌보며 섬기는 복음의 길을 가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런 순진한 이상으로는 위로 올라 갈 수 없으니 세속적인 정치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갈림길에 선다. 올라가는 길이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십자가의 길인지, 혹은 자신이 힘을 갖는 자기 영광의 길인지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놀라운 것은 종교인의 이런 정치적 소망 혹은 욕망을 교회의 평신도 리더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교회 목사님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종교인의 정치적 욕망은 개 교회내에서 평신도 리더들의 그것과 겹치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가려는 의도와 방법은 교회와 교회 사이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이 된다. 정치적인 길로 들어서는 이들은 늘 달콤한 거래의 유혹이 손을 내민다.

가장 큰 문제는 위로 올라가려는 이들이 아니다.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밑에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위로 올라가는 이들에게 비평을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자신의 삶에 오는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복음이 아닌 방식으로 위로 올라가려는 신화는 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삶과 복음으로 얻는 기쁨의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기독교의 교단정치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지만, 결론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축소된다. 위로 올라가지 못한 이로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하게 목회하는 복음의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 삶과 목회의 의미와 성공은 위로 올라가고 좋은 것을 갖고 있는 것에 있지 않고,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과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있기 때문이다. 그 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가는 순종의 삶을 개인적으로도 목회적으로도 잘 이뤄가는 것이 성공이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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