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상상] 그녀의 상심

  그녀는 품격이 있다. 품격이 있다 해서 욕망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더라도 문화적으로 고급스럽게 나타낸다. ‘고급스러운 문화'란 말은 이른바 하위문화나 일반적인 대중문화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의 문제다.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회 계층의 고급스러움을 말한다. 고급스러운 계층이라 함은 도덕적으로 훌륭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경제적 혹은 사회적 신분이 높다는 뜻이다. 고급문화 고급 계층은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TV 속에 있다. TV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언뜻 비치는, 대중의 선망과 상상 속에 존재한다.      

그 세계 속 그녀는 품격이 있다. 그 세계는 질척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질척임은 하위문화의 특성이다. 맺고 끊음이 없고 뒤끝이 있다. 상위 문화는 쿨해야 하고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고급스럽다고 말한다. 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암묵적인 규칙이다. 하지만 그녀는 품격이 있다. 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그런 고급스러운 세상이 재미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고 그 끝을 이미 본 사람에게 세계는 신비로움도 호기심도 느낄 수 없는 무료함일 뿐이다. 

  그녀에게 새로움은 바깥 세계에 존재한다. 척박한 문화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생명력이 있다. 그녀는 저 바깥 세계에 있을 법한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로 가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비록 신비로움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세계가 주는 편안함을 버리고 떠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 싱싱한 세계를 원할 뿐이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싱싱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자기들이 아랫 세상이라 부르는 바깥 세계에 눈을 돌린다. 눈을 돌리고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 속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여행하며 경험하기를 원한다. 바깥 세계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것이 그녀의 품격이자 그녀의 한계다. 이 세계 밖의 소중한 가치를 찾으면서도 그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떡볶이는 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먹어야 맛있다. 도자기에 천연 유기농 재료로 만든 궁중 떡볶이는 거리의 맛을 대신할 수 없다. TV 속의 고급스러운 문화를 보며 좋은 가방을 산다고 그 세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TV 속의 낮은 문화를 보며 인간적인 그 무엇을 느껴 눈물을 흘린다고 그 세계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녀는 그러기 싫다. 하위 세상의 천박한 문화가 싫다. 부담스럽다. 척박함을 받아들일 순 있어도 천박함은 싫다.

  이런 그녀의 마음으로 가는 미로를 환히 들여다 보고, 그녀가 사는 세계의 문 앞에 다다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척박함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움에 대한 경의와 배려와 여유를 갖는 그런 사람, 그녀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 눈을 크게 뜨고서 무엇인가를 찾는 티를 내지 않는다. 가늘게 뜬 눈으로 은밀하게 찾는다. 그 세계에서 볼 수 없고, 척박함의 세계 속에서도 볼 수 없는 진흙 속의 진주와도 같은 존재를 찾는다. 이것은 가장 고급스러우면서도 가장 생명력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신기함을 찾고 싶은 호기심과 무리한 소유욕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주 적은 가능성과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혹 자신의 영혼과 생각 전부를 싱싱함으로 물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세계를 만난다면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꿈을 버리진 않는다. 그 꿈은 이 세계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 보았던 동화책과 고전 소설에서 봤던 이야기들이다. 이 세계의 편안함과 바꿀 만큼의 그런 큰 열정과 기쁨의 세계가 있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신화 속 영웅처럼 살아가는 것 또한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까 꿈을 꾼다. 하지만 저 바깥 세계에 그런 싱싱함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비롭고 호기심이 동하지만 예측할 수는 없다. 혹시나 그런 가능성이 있을까 싶어 그런 사람을 찾을 뿐이다.

  그녀는 과거에 몇 번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진흙 속에서 찾은 진주 같은 사람들을 몇 발견했다. 그들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아름다움과 흥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신비로움은 곧 사라졌다. 그들은 그녀가 사는 세계의 고급스러움에 취해 척박한 힘과 싱싱한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그녀가 바라는 척박함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완성된 모습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 세계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을 닮은 또 하나의 모조품으로 바뀌어 갔을 뿐이다. 그녀의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 세계 바깥 저 곳에서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점점 더 옅어졌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사람은 모두 비슷하구나’하는 생각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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