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상상] 시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_심보선,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에서

 

시인은 그런 듯 하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감정과 분출하는 생각으로 세상을 덮어버린다. 세상은 녹아내리고 해체되고 붕괴한다. 시인은 붕괴한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재창조 한다. 시인 안에 갇혀있던 세상은 시인의 언어로 새로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세상은 겉모습은 이전 세상과 같지만 흐르는 공기와 가라앉는 중력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인의 세상은 종이 위에 신비한 언어로 기록된다.

 

나는 시인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면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내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감각한 이 세상과 시인이 그려낸 세상의 차이에서 오는 어지러움이다. 시인이 그려낸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 나또한 녹아내리고 해체된다. 종이를 덮고 이 세상을 바라볼 때면 나의 눈도 어느덧 시인의 눈과 같은 그 무엇을 바라본다. 세상을 다르게 느끼고 감각한다. 알고 있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들, 느끼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로 세상은 나를 내리 누른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의 무게다. 무게를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 시대를 보건대 희망과 소망보다는 절망과 우울만이 모두가 끄덕이는 언어다.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 속 작은 벌레같아서 얇고 옅고 흐리다. 다만 온통 회색빛으로 바랜 세계 속에서 희망만이 순수하게 빛나는 빛과 색깔마냥 찬란하고 강렬하다. 시인은 이 세상을 해체하고 파국을 던지는 재앙의 천사이자 희망의 실날같은 복음을 전하는 슬픈 사도들이다.  

[상상] 아이는 논다

[종교] 무모한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