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는 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먹어야 맛있다. 도자기에 천연 유기농 재료로 만든 궁중 떡볶이는 거리의 맛을 대신할 수 없다. TV 속의 고급스러운 문화를 보며 좋은 가방을 산다고 그 세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TV 속의 낮은 문화를 보며 인간적인 그 무엇을 느껴 눈물을 흘린다고 그 세계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녀는 그러기 싫다. 하위 세상의 천박한 문화가 싫다. 부담스럽다. 척박함을 받아들일 순 있어도 천박함은 싫다.

간밤에 더위에 지쳐, 밖에서 밤새도록 떠드는 이상한 얘들 소리에 지쳐 아침에 쾡한 눈으로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간장 게장 맘껏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갑작스레 잡힌 저녁식사 약속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약속한 집에 들어가 밥상이 펼쳐졌다. 방상에 나온 건 "간장게장". 안도현 시인의 간장게장이라는 시가 생각났지만,  눈물을 머금고 그자리에서 밥 두 공기와 간장게장 두마리를 꿀꺽 해치웠다. 밥을 먹고 나자 정말 맛있는 복숭아가 후식으로 나왔다. 옆에 앉은 아이가 복숭아 몇조각을 삼키더니 말한다. "아까 복숭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먹고 싶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 저녁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저녁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영상의 비중이 높다. 원래 그림을 전시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나는 마음에 든다. 정지된 그림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상력을 동반한 해석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맘에 든다. 그림 전시회의 정적인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줄 듯 하다. 

오래된 곳에 발을 디딜 때면 내 마음과 몸도 그곳에 연결되는 그 느낌이 좋다. 차갑고도 투명한 깊은 시간의 호수 물에 내 자신을 비춰 보는 느낌이다. 자연과 역사의 오랜 깊음과 기품을 경험하는 기쁨이다. 융건릉에서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