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거울이 있는 카페 풍경
거울은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을 비춰 줍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즐겁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먹먹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울은 내 얼굴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춰 주나 봅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봅니다. 거울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안전하게 훔쳐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시] 우리에게 그 어떤 명예가 남았는가
기억하는가
기억한다면
소리 내어 웃어 보시게
입천장에 박힌 황금빛 뿔을 쑥 뽑아 보시게
그것은 오랜 침묵이 만든 두 번째 혀
그러니 잘 아시겠지
그 웃음, 소리는 크지만
냄새는 무척 나쁘다는 걸
[종교] 스톨을 접다
보통 성의, 가운 위에 스톨을 얹지만, 가운을 입지 않고 스톨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복잡하고 협소한 곳에서 장례식을 치룰 때가 한 예입니다. 이럴 때는 검은 색 수트와 클러지 칼라 위에 스톨을 착용합니다. 하지만 스톨을 빼고 들고 가기가 어색합니다. 가운이 있을 때는 가운에 스톨을 얹은 상태로 함께 보관하고 운반하면 되지만 스톨만 빼서 들고다닐 때는 갖고 다니기가 조금 불편합니다.
[상상] 집을 나선다.
‘어떤 옷을 입을까?’ 매일 같은 고민을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고 결국은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매일 같은 옷을 입을 거라면 무슨 옷을 입을가하는 고민을 안해도 될텐데 늘 나가기 전에 옷걸이 앞에서 머뭇거린다. 마치 집을 나서기 위한 통과의례라도 되는 것마냥 늘 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한다.
[일상] 나 모르세요?
어떤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첫만남에서 심심챦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나 모르세요? 그 사람 모르세요?"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는데,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말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저녁에 아이하고 인터스텔라를 같이 봤습니다. 중력, 블랙홀, 시간 등 아이가 재미있어 할 만한 과학적인 주제들이 나와서 저나 아이나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상상] 우울이라는 병
우울이라는 병이 주는 독특함이 있다. 우울은 우울에 빠진 사람에게 “우울은 나의 적이자 유일하게 나를 알아주는 참된 나”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우울은 그에게 죽음과 함께 생명을 허락한다.
[음악] 쇼팽콩쿨과 피아노의 숲
“쇼팽콩쿨”이라는 말이 인터넷에 여러번 보이는데, 이유인 즉슨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교] 2015년 고난주간 저녁기도회
허우적거리며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냈습니다. 한 해의 끝이 보이는 요즘에 다시금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지난 사순절 기간 고난주간에 했던 기도회입니다. 그 때의 어리숙한 말씀들이 늘 귀에 들리고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내 평생에 남겨질, 어리숙하지만 친근한 말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상] 방으로 들어온 가을
방 안으로 가을이 들어섰다. 국화 냄새가 콧속으로 진하게 들어오는 것이 참 좋다.
낮에 마당 한켠에 피어있던 꽃들을 꺽어 꽃다발을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 놨다. 먼저 음료수 PT병을 잘라 작은 화병을 만들었다. 하나는 조금 큰 병으로 침대방에 또 하나 작은 것은 내 방에 놓았다. 실은 마당에는 진즉부터 꽃들이 피었다. 이일 저일로 바삐 보내다 보니 꽃이 핀 것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오늘 마당에 있던 꽃들을 보니 피었던 꽃들은 거반 시들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뒤늦게 나마 남은 꽃들을 보면서 불현듯 방에다 화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방으로 들여 놓았다.
[종교] 히브리어 성경. BHS 비블리카 헤브라이카 슈트트가르트 한국어 서문판.
슈트트가르트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구입했습니다. 전에 것은 제4판인데다 불법 복사본이었는데 14년 동안 사용했습니다. BHS가 진즉 5판으로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서 언젠가 독일에서 정식 인쇄된 것으로 구입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성서공회에서 서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한국어판을 구입했습니다.
[책]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유인원(類人猿)의 한자 뜻은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다. 원숭이 같은데 따지고 보면 원숭이가 아니다. 사람같은데 따지고 보면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 유인원이다. 그런데 엄격히 말해서 유인원은 원숭이가 아니다.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
시대의 포화와 불길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나르시즘 혹은 개인적 트라우마에 대한 자화자찬과 자기연민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와 세상의 트라우마는 늘 잊혀지고 외면당한다. 시대 어두운 불길 속에 사는 이들에겐 시대와 자신의 구분이 없고, 시대의 트라우마와 개인적인 트라우마 사이의 간극도 없다. 한 개인이 곧 역사며, 역사가 곧 그 사람 하나다. 극단적인 시대에는 극단적인 이상함이 너무도 쉽게 드러난다.
[상상] 어느 죽음
기대와 희망이 사그라지며 절망으로 부폐되어가는 과정은 분노와 분노의 연속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포기할 때쯤이 되어서야, 차라리 진즉 포기하고
작고 소중한 것들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씁쓸한 상상을 하기마련이다.
[일상] 운동회
어릴 때 운동회가 생각난다. 운동회 날 아침은 학교 가는 길부터 달랐다. 기념품에 불량식품에 사진사들이 요란하게 학교 등교길을 장식한다. 학교 문을 들어서면 만국기로 장식된 하늘에 비니루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운동장에는 전날 미리 석고를 부어 그린 100미터 달리기 라인과 릴레이 달리기용 라인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지금 생각하니 꼭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그림같다. 아이들은 모두가 똑같은 운동복을 입는다. 나일론 재질의 위 아래가 하얀 운동복이다. 목에는 청군과 백군을 나타내는 헤어밴드가 걸려있다. 운동장에는 벌써부터 일찌감치 와서 뛰어 노는 얘들도 있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운동회가 시작한 뒤에 오기 시작하지만, 좋은 자리를 놓칠새라 일찍부터 와서 그늘이 진 명당자리에 돗자리를 펼쳐놓은 부모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