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림 일기 몇개
작은 수첩에는 일상의 기록만이 아니라 낙서도 있다.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꽤 신기하고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람에게 옮겨 놓으면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린 것이 있고, 못보던 것을 보게 된다. 물건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들이 물건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듯이, 사람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이 그 사람의 의미를 특별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물건과 사람을 관찰할 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거다. 나의 무지와 무감각함이 더 드러나게 되고 선입견과 달라진 시선들이 분명해진다. 무엇을 본다는 행위는 결국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상] 밤 고구마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젊은 날의 야식은 다만 아침에 부은 얼굴을 요구할 뿐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야식은 활명수가 없다면 소화불량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활명수가 맛있게 느껴지고 야식을 먹을 때마다 소화제 생각이 난다면 위장이 찬란한 젊음의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책] 본다는 것에 대하여 About Looking, John Berger
지난 봄에 작은 세미나에서 존버거가 쓴 사진과 예술에 대한 책인 "본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내용을 요약해 간단한 발제를 했다. 발제를 위해 노트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정신승리] 일상에 의미두기
삶이라는 주어진 시간이 흘러가는데 당장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삶의 의미가 흔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저울에 매달 수 없는 가치있는 삶도 있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위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고 오래되다 보면 사람이 조금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종교] 보여지는 것과 감추인 것 사이
기독신앙의 윤리는 보여지는 것과 숨기는 것 사이에 위치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6절)
[일상] 제의 (The ritual)
칼 구스타프 융(Jung)은 개인의 무의식에 있던 에너지들은 집단이나 군중이 될 경우에 하나의 인격처럼 그 힘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성과 합리와 질서보다는 광폭한 무의식적인 힘을 표출하는 광전사(베르세르크)가 되는 이미지와 비슷하다.
[상상] 새로운 우주와 취향
그런 이상 행동 뒤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숨어있음을 알고 있다. 다만 아무리 외롭고 고독에 자아가 눌리고 녹아내려 안이 터져 피부 밖으로 흘러 나오는 순간 조차도 취향이라는 브레이크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상상] 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슬픔이 차오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진짜 슬픔은 눈이 먼저 알고 공기 중에 숨어있던 슬픔을 끌어모아 터뜨린다. 누구의 호흡이고 누구의 피였을까 잊혀진 습기들이 공기에 스며 있다. 까닭 모를 슬픔은 공기 탓이다. 미세먼지보다 미세한 슬픔이 모두의 폐부에 쌓여 있다. 잊고 살던 사람이 페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상상] 아이는 논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논다. 자유롭게 논다. 아이들은 마을을 떠날 수 없다.
아이는 마을에서 논다. 자유롭게 논다. 아이는 마을을 떠날 수 없다.
[종교] 회개와 기억
기독교에서 "회개"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감정적 슬픔을 강조하기도 하고, 의지적 결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감정적 슬픔이 없으면 회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결단과 고백이 없으면 그 또한 참된 회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회개는 변화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행동이 변화되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죠. 각각의 상황의 특수성이 있겠지만 모두가 맞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일상] 이런 날도 있다
감정이 요동치고 흥분한 날은 잠이 안오곤 한다. 마치 커피 세잔을 연거푸 마신 듯 감각들이 흥분되어 가라앉을 줄 모른다. 생각은 많아져서 머리는 뜨겁고 마음은 포용 못 할 감정을 억누르느라 멍이 든 듯 욱신 거린다. 저녁 즈음에는 애써 마음을 정리한 듯 했지만 큰 태풍을 잠시 지나쳤다 뿐이지 태풍 다음에 물어오는 큰 바람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일상] 아직도 안자고 뭐하냐구요?
세상을 마주하고 살다보면 근본적으로 괴롭고 슬픈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그 상황을 늘 가슴에 새기다 보니 감정적으로 깊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것들에 오래 노출이 되어 마음에 문제가 생긴 듯 합니다. 교회의 현실, 성도들의 아픔, 사회적인 슬픔들을 생각하다보니 스트레스와 우울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나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들을 느낀다고 해서 사회에 어떤 큰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저 슬퍼만 하고 생각만 하고 기도만 하며 살았던 내 자신이 중세 어느 수도원의 우스운 종교인의 전형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실제로 하는 일은 없이 감정적으로만 내 자신을 혹사시키는 영적인 마조히즘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